화면 밖으로 나온 유리, 반도체 뼈대로 진화
중국 광둥성 선전의 세계전시컨벤션센터 16호관에서 10월 27일(현지시간) '2026 터치패널 및 디스플레이 전시회'가 개막했다. 이번 행사는 명칭상 디스플레이 중심이었으나, 실제 전시장 내부를 채운 주인공은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 소재인 유리기판(TGV)과 초고속 광통신 패키징 부품들이었다. 과거 스마트폰용 외장 유리 가공이나 패널 조립에 머물렀던 중국의 부품 소재 생태계가 첨단 반도체 패키징 시장으로 급격히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양상이다. 전 세계 디스플레이 생산을 이끌어온 중국 기업들이 유리를 단순한 화면이 아닌 반도체의 핵심 골격으로 탈바꿈시키는 거대한 기술적 전환을 현장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애플 아이폰의 커버글라스 공급사인 란쓰과기(렌즈테크놀로지) 부스는 '물리적 세계의 새로운 시대를 선도한다'는 슬로건 아래 수많은 바이어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스마트폰 유리를 넘어선 차세대 패키징 소재 라인업이 공개되었는데, 특히 구리 전기도금 공정을 거쳐 미세 관통 홀을 채운 금속화 기판과 화학기계적연마(CMP) 기술로 나노미터 단위의 초평탄화를 구현한 기판 샘플이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란쓰과기가 단순 가공을 넘어 미세 배선 형성과 초정밀 연마 기술을 상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렸음을 보여준다. 또한 데이터센터용 저온동시소성세라믹(LTCC) 그린 테이프와 산화알루미늄 세라믹 기판을 함께 선보이며 초고속 인터커넥트 역량을 과시했다. 란쓰과기 엔지니어는 30년간 축적한 유리 가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반도체 유리기판 전용 공정을 구축했으며, 현재 AI 가속기 칩의 대면적화 및 발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글로벌 고객사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중국 기업들의 공세 속에서도 한국 기업의 독보적인 기술력은 현장에서 빛을 발했다. 국내 유일의 진공로봇 전문 기업인 티로보틱스는 510×510㎜ 규격의 대형 유리기판을 다루는 비접촉 이송 로봇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시연 영상에 따르면, 이 로봇은 수백만 개의 미세 홀이 뚫려 파손과 오염에 매우 민감한 대형 유리기판을 물리적 접촉이나 흡착 없이 공중에 띄운 채로 진공 챔버 내부를 이동했다. 일본과의 기술 제휴로 완성한 '비접촉 부유 이송 핸드'를 적용해 정전기나 파티클 오염을 원천 차단한 것이 특징이다. 웨이퍼보다 10배 이상 무거운 하중을 견디며 고진공 상태에서 초정밀 이송을 수행하는 이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희소하다. 티로보틱스는 8.6세대 OLED 라인에서 검증된 기술을 최적화해 이번 솔루션을 완성했으며, 진공과 대기 로봇을 통합 공급하는 턴키 특허를 통해 중국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격화되는 기술 추격과 한국의 과제
티로보틱스 안승욱 대표는 BOE 등 기존 중국 대형 디스플레이 고객사들이 유리기판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차세대 패키징 시장 선점을 위한 차별화된 로봇 경쟁력을 강조했다. 한편, 현장을 참관한 이승우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중국의 빠른 기술 추격 속도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나타냈다. 이 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할 때 핵심 기술이 무단으로 복제되지 않도록 공정을 '블랙박스화'하고 단계적인 보안 체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선전 전시회는 디스플레이와 반도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 기업들이 기술 격차 유지를 위해 보안과 독자 기술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