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세수, 공공서비스와 노동권 강화에 우선 투입하라”

반도체 산업의 호황에 힘입어 내년도 정부 예산이 821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로 책정된 가운데, 노동계는 확보된 추가 세수를 공공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그리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해소에 최우선적으로 활용할 것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했다. 아울러 인공지능(AI) 기술의 확산과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노동자들의 임금과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 마련도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는 29일 오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번 추가 세수가 모두를 위한 공공성을 확보하고 노동권을 넓히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제시한 예산 편성의 4대 원칙은 의료, 돌봄, 교통, 에너지, 주거, 교육 등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의 확대와 공공부문에서의 양질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철폐, 그리고 AI 산업 전환 및 기후위기 대응이다.

일자리 창출과 차별 해소를 위한 국가의 역할 강조

고기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시점에서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공서비스의 가치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역설하며, 추가 세수를 공공서비스 확충에 먼저 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청년 취업자 수가 47개월 연속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언급하며, 스웨덴이나 아일랜드, 프랑스 등 여러 국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실효적인 수단인 ‘공공부문의 좋은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 사업장만으로는 온전히 보장받기 어려운 노동자의 ‘일 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부 예산이 집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핵심 과제로 다뤄졌다. 고 직무대행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불평등한 임금 체계와 일터 내의 차별이 여전한 실정이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먼저 모범적인 사용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고 이를 민간 영역까지 확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후 시설 개선 및 사회보장제도 공공성 강화 요구

현장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요구사항도 이어졌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도시철도의 노후 시설 개선을 위한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복원을 요구했다. 김정섭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서울 1~4호선은 63.2%, 5~8호선은 55.8%가 성능평가에서 C·D 등급을 받을 만큼 시설 노후화가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지원 예산마저 모두 삭감한 것은 시민의 안전을 방치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며, 2인 1조 근무를 위한 안전 인력 확충도 함께 요구했다.

사회보장제도의 국가 책임 강화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다. 황병래 사회보장기관협의회 의장은 현행법상 국가가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의 20%를 지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일반회계 지원 비율이 12.3%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황 의장은 사회보장제도의 공공성을 수호하기 위해 지원금을 1조 6,300억 원 추가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민연금공단의 관리운영비 지원이 100억 원이라는 정액에 묶여 있는 점을 언급하며, 운영비의 10%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