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의 교섭 거부와 지연되는 노동권
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시행된 지 7개월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 교섭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원청을 사용자로 판단하는 결과가 나와도 실제 교섭이 성사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는 원청 측이 교섭요구 사실공고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교섭단위 분리 결정에 불복하는 등 절차마다 제동을 걸며 교섭을 지연시키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노사가 법적 판단을 받기 위한 소모적인 절차를 반복하면서 정작 실질적인 협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25곳 중 4곳뿐인 교섭 진행 상황
박현희 금속노조 법률원 부원장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원청교섭 활성화 및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금속노조와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 박 부원장은 사용자성을 부정하는 원청의 태도로 인해 원하청 교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용자성이 인정된 이후에도 교섭요구 사실공고와 교섭단위 분리, 교섭대표 결정 등 각 단계마다 분쟁이 발생해 협상이 중단되는 양상이다.
실제 금속노조의 사례를 살펴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교섭을 요구한 원청 25개 사업장 중 무려 64%에 달하는 16곳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창구단일화 절차를 완료한 곳은 8곳에 불과하며, 지난 19일 기준 한국타이어, 한화오션, SECO서진산업, CTR모빌리티 등 단 4곳만이 교섭을 진행 중이다. 특히 한화오션은 원청이 하청 노동자 측의 교섭 의제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반복되는 법적 분쟁과 제도적 대안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이 내려져도 원청의 비협조는 계속되고 있다. 사용자성이 인정된 7곳 중 한온시스템, 한국타이어, 포스코 등 3곳만이 창구단일화 절차를 마쳤다. 반면 동희오토, 현대자동차, 한국지엠은 시정 결정 이후에도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았다. 한화오션의 경우, 교섭 범위에 포함될 조합원 수를 두고 지방 및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있었음에도 원청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갈등을 이어갔다. 포스코 역시 교섭단위 분리 결정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인해 교섭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이에 박 부원장은 원청교섭의 특수성을 고려해 창구단일화 적용을 입법적으로 제외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원청의 지배력이 미치는 근로조건의 범위가 하청 집단마다 다르므로 일률적인 창구단일화 적용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또한 원청이 공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노동위원회가 이를 대신 공고하거나, 교섭단위 분리 관련 분쟁 중에도 기존 교섭의 효력을 유지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한편 최정은 중앙대 교수는 현행 법령 내에서 노동위원회의 재량을 활용해 자율교섭 사례를 점진적으로 쌓아가는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