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재해의 직접 경험이 정치 지형을 바꾼다

전 지구적으로 빈번해진 폭염과 폭우, 산불 등 극한 기상 현상이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결정적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기상 재해를 직접 겪은 시민일수록 기후 위기 대응을 공약으로 내건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2020년 호주 대형 산불 발생 지역과 2021년 독일 홍수 피해 지역에서 녹색당 지지율이 상승한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비영리 연구기관인 국제응용시스템분석연구소(IIASA) 연구팀은 최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극한 기상 현상이 개인의 투표 행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동안 축적된 유럽 사회 조사 데이터를 활용해 유럽 25개국 15만 명의 사례를 정밀 분석했다.

온도 상승에 따른 녹색당 지지율의 수치적 변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례적인 고온을 경험한 유권자들은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감을 더 강하게 느끼며 관련 우려도 깊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곧 선거에서 녹색당이나 녹색 연합을 구성하려는 정당에 투표할 확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지난 12개월간 최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 확률은 4%포인트, 책임감은 2.5%포인트, 녹색당 투표 확률은 2.8%포인트씩 증가했다.

특히 최근 10년 내 상위 5%에 해당하는 고온 현상이 3일 이상 지속될 경우 그 영향력은 더욱 뚜렷해졌다. 이러한 고온 현상이 단 하루 더 발생할 때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우려는 7.3%포인트, 책임감은 3.2%포인트 상승했으며, 녹색당 및 녹색 연합에 대한 투표 확률은 5%포인트나 높아졌다. 연구진은 이러한 수치가 기후 변화의 영향이 단순한 인식 변화를 넘어 실제 정치적 의사결정까지 견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저학력 남성 집단에서의 극적인 태도 변화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지점은 기존에 녹색 지지 성향이 낮았던 '저학력 남성' 집단에서 나타난 변화다. 기상 재해 경험이 녹색 투표로 이어지는 경로는 세 가지다. 투표율 자체가 상승하거나, 기존 지지층의 투표율만 변하거나, 혹은 다른 정당을 지지하던 유권자가 마음을 바꾸는 경우다. 분석 결과 투표율이나 유권자 구성의 큰 변화는 없었기에, 이는 기존 지지층이 기상 재해를 계기로 녹색당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평상시 저학력 남성은 여성이나 고학력층에 비해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감과 우려가 현저히 낮았으며, 녹색당 투표 확률도 낮았다. 책임감 측면에서 저학력 남성은 저학력 여성보다 6.4%포인트, 고학력 남성보다 12%포인트, 고학력 여성보다 17.3%포인트 낮은 수치를 보였다. 그러나 극한의 고온을 경험한 후에는 이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가장 심한 고온을 겪은 후 저학력 남성의 녹색당 투표 확률은 저학력 여성보다 단 1.1%포인트, 고학력 남성보다 1.8%포인트, 고학력 여성보다 6.2%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좁혀졌다.

경제적 불평등이 기후 대응의 걸림돌

다른 집단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관찰되었다. 도시 지역이 농촌보다 녹색 지지 성향이 강했으나 극한 기상 현상 경험 후에는 그 차이가 희석되었고, 고령층 중에서도 특히 고학력 남성이 기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면 실업률이 높거나 온실가스 배출 산업 의존도가 높은 지역, 혹은 경제 상황이 열악한 곳에서는 기상 재해 경험이 정치적 행동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경제적 생존 문제가 환경에 대한 우려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연구를 주도한 로만 호프만 연구원은 탈탄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역 간, 지역 내 경제적 불평등이 기후 대응에 대한 관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기후 정책이 화석 연료 산업에 의존하며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간과할 경우 강력한 반발을 살 수 있다고 지적하며, 전환 과정에서 취약 지역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