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실체 파악 위해 한국 반도체 주시

전 세계 금융권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열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경제의 위상이 새롭게 조명받았다. 현지시간 28일 기준금리 동결을 선언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한국 경제에 대해 예상보다 훨씬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신문의 이상은 워싱턴 특파원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견 중 "연준이 대차대조표를 추가로 축소할 경우 한국과 일본의 달러 자금시장에 닥칠 충격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자 나온 답변이다. 한국 기자가 FOMC 회견에서 공식 질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워시 의장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싱가포르가 첨단 기술 성장에 필수적인 투입재를 공급하는 핵심 기지임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으로 향하는 선박과 항공기에 실린 물동량을 확인하면 한국 경제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미국 경제를 관통하는 AI 투자 열풍의 실질적인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을 관측창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D램은 AI 데이터센터 구축의 핵심 부품인 만큼, 한국의 반도체 수출 추이는 미국의 막대한 AI 투자가 실제 실물 경제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중대한 지표가 된다.

20년 인연 드러낸 워시 의장과 신현송 총재

이번 회견에서는 인물 간의 뜻밖인 관계도 공개되었다. 워시 의장은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를 20년 지기 친구이자 매우 뛰어난 역량을 갖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운용 방안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를 나눈 바 있다. 당시 워시 의장은 연준 이사로 재직 중이었으며, 신 총재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였다. 이후 신 총재는 국제결제은행(BIS)에서 12년 가까이 경제고문과 조사국장, 통화경제국장 등 요직을 거치며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이끄는 핵심 인물로 성장했다. 그는 지난 5월 BIS 이사회 이사로도 선출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을 다시 연결한 주제는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였다. 금융위기 시절에는 시장 붕괴를 막기 위한 자산 확대가 화두였다면, 현시점에는 불어난 자산을 어떻게 축소할지가 핵심 과제다.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는 한국 등 해외 달러 자금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이에 대해 워시 의장은 관련 태스크포스의 권고안을 내년 1분기 초에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덧붙였다.

한국 경제의 위상 변화와 시사점

이번 FOMC 회견은 한국 경제가 처한 위치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과거 한국이 미국의 금리 결정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는 수동적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미국 중앙은행이 자국 경제의 미래를 읽기 위해 한국의 동향을 살피는 능동적 파트너로 격상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상은 특파원의 질문은 한국이 미국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받는 존재를 넘어, 미국 경제가 왜 한국을 주목해야 하는지를 글로벌 무대에서 확인시켰다.

물론 워시 의장의 관심이 곧 한국 금융시장의 안전을 담보하거나, 두 수장의 친분이 정책적 일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의 AI 투자 흐름을 읽는 중요한 관측 지점이 되었다는 사실과 신현송 총재와의 인연이 확인된 점은 이번 FOMC가 한국에 남긴 유의미한 성과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