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뒤집은 중노위, 산업안전 사용자성 범위 넓혔다

중앙노동위원회가 현대자동차 공장과 연구소 내에서 근무하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산업안전 관련 근로조건에 대해 현대차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이번 결정은 구내식당, 보안, 시설 및 미화 부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지난 28일 송달된 중노위의 현대차 재심결정서를 분석한 결과, 금속노조가 요구한 산업안전 의제 중 극히 일부만 사용자성을 인정한 울산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판단과 달리, 중노위는 그 적용 범위를 훨씬 폭넓게 해석했다. 중노위는 지난 8월 31일 금속노조가 현대차의 교섭요구 사실공고에 대해 제기한 시정신청 재심 사건에서 초심의 결론을 유지하면서도 판단의 기준을 달리했다.

이번 결정문은 통상적인 송달 기간인 30일을 넘어 50일이 지난 시점에 전달되었다. 이는 결정문의 방대한 분량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노위는 효율적인 업무 처리를 위해 당초 하나로 접수되었던 사건을 세 개로 분리하여 진행해 왔으며, 생산 및 판매 부문에 대한 결정문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의제별 판단 넘어선 중노위의 거시적 판단 기준

앞서 울산지노위는 금속노조가 제시한 교섭의제 중 '의무실 및 휴게공간 제공'과 보안 업무의 '심야 노동대책' 중 일부 사항에 대해서만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원청 소속 보안 인력과의 비상연락망 구축 및 근무 환경 개선 등에 한정하여 현대차의 책임을 물었다. 그 외의 의제들에 대해서는 원청의 처분 권한이 없거나, 원청이 영향을 미치더라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판단을 유보했다. 즉, 울산지노위는 개별 교섭의제마다 사용자성 여부를 따로 따지는 방식을 취했다.

반면 중노위는 의제별로 일일이 사용자성 유무를 가리는 대신, 일부 의제에서 사용자성을 확인한 후 나머지 의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는 방식을 택했다. 중노위는 원청이 하청업체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와는 별개로, 하청 노동자의 작업 현장에 존재하는 유해·위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고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주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청 노동자의 산업안전 관련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노조가 제시한 모든 의제에 대해 일일이 지배력을 확인할 필요는 없으며, 단체교섭의 당사자 지위와 개시 필요성을 판단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명시했다.

100쪽 넘는 결정문, 현대차의 교섭 의무 근거 제시

식당과 보안 부문을 다룬 이번 결정문은 단일 부문에 대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분량이 100쪽을 상회한다. 결정문에는 현대차가 왜 교섭 의무를 지는지에 대한 상세한 근거가 포함되어 있다. 구내식당 노동자의 경우, 현대차의 안전보건관리규정이 모든 임직원뿐만 아니라 수급인 관계의 근로자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 핵심 근거로 제시되었다. 하청업체가 독자적인 안전 계획을 세우더라도 결국 원청의 규정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안 등 2차 수급업체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1차 수급업체인 현대엔지니어링이 해결할 수 없는 건물 구조 변경이나 기반 설비 교체 등을 원청이 직접 처리해 왔다는 점과 초소 시설 개선 등이 원청의 소유·관리 영역에 있다는 점을 들어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금속노조 법률원의 박준성 공인노무사는 울산지노위가 교섭의제를 자율적 범위로 제한했던 것과 달리, 중노위는 거시적인 근로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사용자성 범위를 확장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나머지 의제들을 미판단 영역으로 남겨둠으로써 원청이 '불인정'을 이유로 교섭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금속노조는 27일 현대차에 공문을 보내 지연된 원청 교섭의 조속한 진행과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한편 중노위는 지난 19일 현대그린푸드 울산공장 노조가 제기한 사건에서도 초심의 기각 결정을 취소하고 산업안전 관련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