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를 메모리 내부에서 직접 처리해 전력 소모를 혁신적으로 낮추는 차세대 반도체 개발은 어떻게 가능할까. 인공지능이 설계와 실험의 영역까지 넘보는 시대에 인간 공학자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

한국공학한림원은 향후 10년간 대한민국이 직면할 중점 과제로 저전력·고성능 반도체 기술과 인간-로봇 상호작용 기술을 포함한 총 10가지 핵심 질문을 선정했다. 한림원은 오는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되는 제1회 ‘공학인의 날’ 행사에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한국 공학의 10대 질문(Engineering 10)’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학이 선제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를 제시하려는 목적이다.

AI 반도체 주도권과 로봇 안전성 확보

반도체와 AI 분야에서는 전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성능을 극대화하는 차세대 기술 개발이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급증함에 따라 기존의 반도체 구조로는 발열과 전력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데이터를 메모리에서 연산 장치로 이동시키지 않고 메모리 안에서 즉각 계산하는 ‘지능형 메모리(PIM)’ 등이 거론됐다. 한국이 보유한 메모리 반도체 강점을 활용해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범용 AI 모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도 포함됐다. 반도체, 바이오, 의료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특정 산업의 데이터를 활용해 특화된 AI 모델을 구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한 피지컬 AI의 안전성 문제도 주요 질문 중 하나다. 울타리 안에서 정해진 일만 하던 기존 산업용 로봇과 달리,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피지컬 AI는 미세한 인식 오류로도 인명 사고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업무를 수행하다 사고를 낼 경우의 통제권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문제도 핵심 과제로 다뤄졌다. 금융이나 의료, 기업 의사결정 등 AI의 판단에 의존하는 영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AI의 판단 근거를 추적하고 인간이 즉각 개입해 중단시킬 수 있는 통제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다.

에너지 안보와 고령화·기반시설 대응

에너지 안보와 핵심 광물 자원 확보 역시 10대 질문에 이름을 올렸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급증은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공학한림원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저장 장치(ESS) 및 지능형 전력망과 결합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배터리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리튬, 니켈,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대체 소재 개발과 폐자원 재활용 기술도 주요 과제다.

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기술적 대응책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의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신체 및 인지 기능 저하를 보완해 노년기 독립 생활을 돕는 기술이 핵심이다. 혈액 검사나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폰에서 수집된 건강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질병을 예측하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나 디지털 치료기기를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노후화된 국가 기반시설을 기후 재난으로부터 지키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국내 기반시설 중 최소 4분의 1이 건설 후 30년이 경과한 상태이며, 기후 변화로 인한 극한 호우와 폭염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센서와 드론을 활용해 시설물을 감지하고, 가상 공간에 시설물을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로 위험도를 실시간 진단해 보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공학 교육의 패러다임 전환과 미래 산업 육성

AI가 설계와 실험을 수행하는 환경 변화에 맞춘 공학 교육의 혁신도 요구된다. AI가 코딩, 도면 설계, 가상 실험, 논문 분석까지 수행하게 됨에 따라 공학자에게 필요한 역량도 변하고 있다. 한림원은 미래 공학자에게는 ‘무엇을 왜 해결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정의하고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AI를 연구와 설계에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실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교육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기존 주력 산업을 넘어선 차세대 핵심 기술 육성 방안이 포함됐다. 양자 기술, 우주항공, 합성생물학 등 신산업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선점하는 것은 물론,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서 생산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 기술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의준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이번 ‘Engineering 10’은 대한민국이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공학이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