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특수가 가져온 화려한 지표와 그 이면의 불안

올해 2분기 기준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독일과 일본이라는 경제 대국 두 나라를 합산한 수치를 상회하고 있다. 수출 또한 연간 1조 달러 달성을 목전에 두며 성장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연간 4% 수준의 성장 가능성까지 점쳐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눈부신 경제 지표들은 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라는 일시적 호재에 기댄 결과다. 즉, 현재의 화려한 성적표는 한국 경제가 우연히 맞이한 '로또'와 같은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장밋빛 전망 뒤에는 깊은 우려가 공존한다. AI 산업의 유행이 변동할 경우를 대비한 대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AI 수요가 조절될 시 한국 경제가 직면할 취약성을 경고했다. 반도체 산업이 꺾일 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핵심 동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재정 확장과 고용 시장의 심각한 불균형

정부의 재정 운영 방식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반도체 기업들로부터 거둬들이는 막대한 세수를 바탕으로 내년 예산을 전년 대비 12.8% 늘어난 821조 원 규모로 편성하는 등 확장 재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일시적인 재원을 근거로 지출을 늘리면 향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경고를 남겼으나,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표상의 풍요와 달리 고용 지표는 매우 암울한 실태를 보이고 있다. 청년층 고용률은 4년 연속 하락세에 있으며, 신규 창출되는 일자리의 질 또한 낮다. 올해 늘어난 일자리 10개 중 9개가 비정규직인 데다, 20대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43.8%에 달한다. 이러한 괴리 때문에 4% 성장의 혜택을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이 다수 존재하며, 국가 차원의 일자리 프로젝트가 시급한 시점이다.

구조개혁의 실종과 산업 생태계의 위기

프랑스가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의 지연으로 인해 국가 기능의 마비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모습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제와 연금 수급 연령 상향(만 62세에서 64세) 추진 과정에서의 반발로 인해 개혁이 표류하고 있다. 한국 역시 주 4.5일제 도입 논의와 메가특구 내 주 52시간제 예외 허용 시도 등이 노동계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으며, 연금개혁 대신 국민연금의 국내 증시 투자 비중을 높이는 무리수를 두었다가 주가 하락의 여파를 맞고 있다.

반도체가 시장의 관심을 독점하는 동안 타 산업은 중국의 공세로 위기를 맞고 있다. 150만 명을 고용하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중국산 전기차의 가성비 공세로 인해 국내 시장 점유율이 2022년 4.7%에서 올해 상반기 35%로 4년 만에 약 7배 급증했다. 제조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대책이 미비한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규제 없는 노동 환경과 국가적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반도체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정, 노동, 연금 분야의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반도체 호황에 취해 개혁이 실종된 상태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 때문에 정치권 또한 구조적 문제 해결보다 다른 정치적 쟁점에 몰두하고 있다. 자칫하면 천문학적인 당첨금에 눈이 멀어 국가 전체가 위기를 맞는 '네덜란드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