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집단이 장악한 한국 정치의 두 축
대한민국 정치는 '운동권'과 '법률가'라는 두 엘리트 계층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1985년 서울대 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초대 의장을 역임한 김민석 대표는 미국에서 취득한 법학박사 학위를 자신의 주요 프로필로 활용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1988년 서울대에 입학한 장동혁 대표는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직을 수행한 뒤 정치권에 발을 들인 법률가 출신이다. 국회 내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는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들은 대개 '86 운동권'이거나 판사, 검사, 변호사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통령직에서도 예외가 아니며, 차기 대권 주자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운동권이나 법률가 출신 엘리트가 아니면 경쟁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한국 정치는 이들의 정신세계에 완전히 종속되어 버렸다.
과거의 영광에 머문 운동권과 미래가 없는 법률가
운동권 엘리트들은 사회적 '청산'과 '척결'을 끊임없이 외쳐왔다. 민주화 이후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들이 사회 발전에 기여한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들의 자부심은 민주화 이후의 성과가 아닌, 과거의 반독재 투쟁 경험에 머물러 있으며, 이를 근거로 권력의 요직을 독점해 왔다. 이들 역시 미래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나, 그들이 제시하는 비전은 과거 박정희 정권의 성장국가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혁신성장국가론'을 내세웠던 이들은 최근 들어 'AI 강국론'에 몰두하며 과거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한편, 이번 국회에서 법률가 출신 의원은 60명을 넘어섰다. 정치권에 법률가들이 이토록 몰리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본래 법률가는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 처벌 여부를 가리는 데 특화된 집단이기에, 이들의 사고방식은 미래지향적이기 어렵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사회적 비전을 논하는 것은 어색한 일임에도, 이들은 법정을 떠나 의원과 장관, 대통령이 되어 정치를 혼란에 빠뜨렸다. 법치주의를 훼손한 주범들 또한 법무부 장관 출신의 판·검·변 출신들이며, 이들은 팬덤 정치에도 가장 빠르게 적응했다. 합리적일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조사와 처벌에 매몰된 이들은 86 세력만큼이나 과거 지향적이다.
시민을 잃어버린 정치, 권력 투쟁의 놀이터가 된 국회
윈스턴 처칠은 과거가 현재와 싸우게 두면 미래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현재의 한국 정치는 과거와 과거가 충돌하게 방치한 결과 길을 잃은 상태다. 대통령은 국민이 아닌 자신을 위해 싸우며, 개인의 사법적 문제 해결을 최우선 순위로 둔다. 국회에서는 성실한 준비나 책임감 있는 질의를 찾아보기 어렵고, 입법부의 권위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국회의장은 개인의 부각에만 열중한다. 정치의 미래를 우려하는 것은 시민뿐이며, 의원들은 팬덤 언론과 당원들에게 아첨하느라 바쁘다.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는 대신 자신들의 적과 싸우는 것을 정의 구현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정치를 장악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는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과업이며, 권력은 시민에게 있고 정치인에게는 의무만이 존재해야 한다. 토머스 페인이 지적했듯, 사회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국가는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존재한다. 이러한 국가를 통제하려면 시민에게 책임지는 정치가 필수적이지만, 지금의 정치는 사회 보호 대신 국가를 자신들의 '여물통'으로 만들려는 거친 싸움만 반복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의제는 권력 투쟁을 위한 도구일 뿐, 시민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결국 한국 정치는 그들만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토머스 페인은 시민의 나라란 다음 세대를 교육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며 절망에 맞서는 체제를 갖춘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약자들은 결핍과 굴욕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절망에 빠진다. 현재 우리에게는 엘리트들을 위한 국가는 존재할지언정, 시민과 가난한 민중을 위한 국가는 부재한다. 로버트 벨라 교수가 강조했듯, 민주주의에는 '도덕적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공통 감각', 운명 공동체로서의 '신뢰감', 그리고 미래를 위한 '책임감'이 그것이다. 과연 정치 엘리트들은 이러한 연대와 동료의식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의 정치는 진정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