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원인 조작도 '은폐'가 아닌 노동부의 좁은 해석

지난 2020년 10월, 고 장덕준님이 과로로 인해 사망한 사건 이후 김범석 쿠팡 의장은 노동자가 성실히 일했던 기록을 남기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지난 22일 고용노동부는 10개월간의 조사 끝에 쿠팡의 산재은폐 및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김 의장의 지시가 부적절했을 뿐 법 위반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7조는 사업주가 산업재해 발생 사실을 은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노동부는 쿠팡이 재해조사표를 제출하고 발생 사실을 보고했다는 점을 들어 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노동부의 시각에서는 산재의 원인을 숨기거나 증거를 조작하는 행위조차 '산재은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셈이다.

만약 산재은폐 적용이 어려웠다면 현장 훼손 및 원인조사 방해를 금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제56조 5항에 근거해 김 의장을 처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동부는 자신들이 직접 원인조사를 수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인조사 방해 혐의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쿠팡에 무죄를 부여하기 위해 노동부가 지나치게 방어적인 논리를 펼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찰과의 공조를 통한 업무방해죄 적용 가능성도 검토되지 않았다. 결국 노동부는 '산재은폐'라는 개념을 극히 좁게 해석함으로써 김 의장에 대한 면죄부를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취업 방지용 블랙리스트도 '법 위반 아니다'라는 황당한 논리

쿠팡의 블랙리스트 운영 역시 노동부는 법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2020년 11월, 쿠팡은 노동부의 채용절차 점검을 앞두고 '심사숙고 고려대상자 리스트'라는 명목의 블랙리스트를 삭제하기로 했으나, 이 사실은 2026년에 들어서야 폭로되었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해당 리스트가 '외부로 공유'되어 '다른 회사'의 채용을 방해했을 때만 법 위반이 된다는 자의적인 단서를 달아 해석했다. 산재은폐와 마찬가지로 법조문을 지나치게 축소 해석한 것이다.

특히 2024년 폭로된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1만 6천 450명 규모 블랙리스트 사건은 노조 간부와 기자들이 포함되어 있고 쿠팡과 CFS 간의 자료 공유가 확인된 만큼 무죄를 주장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2년 동안 제대로 된 조사를 수행하지 않다가, 2026년에 이르러 손쉬운 면죄부를 주었다. 노동부의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플랫폼 기업들이 내부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운용하며 노동자의 취업을 방해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는 위험한 선례가 남게 된다.

조사 실패를 '핑계'로 돌린 노동부, 은폐될 산재의 공포

노동부는 쿠팡 전담 TF를 구성해 10개월간 조사를 진행했으나, 공소시효 경과, 압수수색 영장 기각, 쿠팡의 자료 제출 거부, 피해자들의 증언 두려움 등을 이유로 들며 한계를 토로했다. 거대 플랫폼 기업을 조사하는 과정의 어려움은 있으나, 이는 결과적으로 조사의 무능함을 자인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고 장덕준님 사건 당시 대구지방노동청 근로감독관들이 산재은폐 과정에 개입했다는 내부 제보까지 나온 상황에서 노동부의 조사 결과는 신뢰를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쿠팡의 행위가 법 위반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길을 택했다.

이러한 노동부의 선언이 불러올 파괴적 영향은 매우 우려스럽다. 쿠팡에 면죄부를 준 이번 결정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산재 은폐와 블랙리스트 활용의 길을 열어주는 신호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 발생 건수가 줄어들어 대통령이 노동부를 칭찬했다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현장에서는 산재 신청 자체가 블랙리스트 등재의 이유가 될까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쿠팡의 산재은폐 매뉴얼이 여전히 작동하는 현실 속에서, 노동부의 이번 발표로 인해 얼마나 더 많은 산재가 기록조차 남지 못한 채 숨겨지게 될지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