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대장정, 인류의 존엄을 새기다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로 지정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800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 제작에 돌입한다. 과거의 대장경이 백성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만들어졌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지혜와 존엄성을 기록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번 작업은 완성까지 최대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경판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한 달 반이라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로 70cm, 세로 24cm 크기의 경판 앞뒤로 약 640여 자의 글자를 새겨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망치와 조각칼을 이용해 동전 크기만한 글자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깎아내며, 이 과정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전통 방식 그대로 이어지는 경건한 의식

제작 방식은 800년 전 고려 시대의 전통을 엄격히 따른다. 산벚나무를 3년 동안 바닷물에 담가 나무의 뒤틀림을 방지하는 공정을 거치며, 글자 한 자를 새길 때마다 세 번 절을 올리는 경건한 태도 또한 그대로 유지된다. 기후 위기와 전쟁, 그리고 급격한 AI 시대의 도래 속에서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 800년 전의 호국 염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과거 1,700명의 인원이 분담했던 방대한 작업은 우선 15명의 인원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후학을 양성하며 최장 100년에 걸쳐 대장경 제작을 이어갈 계획이다. 관계자는 고려 시대 각수들이 그러했듯 판각 기술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후대에 온전히 전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장경 타운 조성으로 전통 계승 기반 마련

해인사는 이러한 전통 판각 기법이 끊기지 않고 전수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도 나선다. 약 33만㎡ 규모의 부지에 '대장경 타운'을 조성하여 체계적인 전승 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인류의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적 위기 속에서, 이번 대장경 제작은 인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