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세운 경영 거점과 기술 혁신의 상징

미국의 유명 건축 설계사인 SOM은 LG트윈타워의 설계를 담당하며, 고(故) 구자경 명예회장의 철학이 새로운 본사 건축물에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평가했다. 1987년 서울 여의도에 들어선 트윈타워는 화학과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LG가 세계 시장을 겨냥해 구축한 핵심 경영 거점이었다. 당시 여의도는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으나, LG는 이곳에 대규모 본사를 세우는 파격적인 행보를 통해 '서울의 맨해튼' 시대를 개막했다.

LG의 본사 역사는 1947년 부산 창업 이후 지속적으로 확장되어 왔다. 1969년 종로 대왕빌딩을 거쳐 1971년 서울역 인근 삼주빌딩에 입주했으나, 급증하는 계열사와 인력을 수용하기에는 공간이 협소했다. 당초 LG는 52층 규모의 단일 타워를 구상했으나, 국회의사당 인근의 고도 제한 규제로 인해 두 개의 타워로 나누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SOM의 설계와 럭키개발의 시공이 이루어졌으며, 슬러리월과 바레트 공법 등 혁신적인 건설 기술이 도입되어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주목받았다. 또한, 외벽 유리와 알루미늄 등 주요 자재에 국내 기술 제품을 적극 활용하며 국산화의 의미를 더했다.

'인화'의 정신과 미래 세대를 위한 과학 교육

구자경 명예회장은 쌍둥이 형태의 트윈타워를 '인화단결'의 상징으로 정의했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인간 존중의 가치로 이어졌으며, 사옥 내부에 과학 인재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결단으로 나타났다. 1990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민간 과학관인 '연암사이언스홀'은 어린이들이 과학을 체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운영되었다. 구 회장은 아이들이 미래의 주인공임을 강조하며 운영 비용에 대한 부담을 갖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러한 교육적 유산은 현재 마곡에 위치한 'LG디스커버리랩 서울'로 계승되어, 청소년들에게 AI와 로봇 기술 체험 기회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마곡 R&D 거점 구축과 구본무 회장의 마지막 열정

트윈타워가 경영 조직의 중심이었다면, 마곡의 LG사이언스파크는 기술 융합을 위한 연구 거점이다. 3대 구본무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이 프로젝트는 약 4조 원의 대규모 투자가 투입되어 2014년 착공 후 2018년 4월에 완성되었다. 구 회장은 연구원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지하철역 동선과 연구동 사이의 계단 구조까지 세밀하게 살폈으며, 연구원들이 자연스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공중다리와 지하 통로를 설계했다. 현재 이곳에는 LG전자,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등 8개 주요 계열사가 입주해 있으며, 약 2만 5천 명의 인력이 협력사와 함께 근무 중이다.

구본무 회장은 2017년 9월, 건강 문제로 첫 뇌수술을 받은 직후에도 건설 중이던 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연구원들을 위한 최적의 환경 조성을 당부했다. 이는 그의 마지막 공식 외부 일정이었으며, 그는 사이언스파크 개장 한 달 뒤인 2018년 5월에 별세했다. 사이언스파크 개장 이후 LG의 연구 역량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LG전자의 등록특허는 2018년 약 8만 2천 건에서 2025년 약 9만 9천 건으로 늘어났고,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 역시 2020년 약 2만 건에서 2025년 약 3만 8천 건으로 크게 증가하며 기술 자산을 축적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연결' 전략과 AI 시장 선점

4대 구광모 회장은 선대가 구축한 마곡의 R&D 인프라를 바탕으로 미래 사업의 연결성을 강화하고 있다. 취임 직후 사이언스파크를 첫 현장 방문지로 선택하며 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특히 트윈타워 리모델링을 통해 동관과 서관을 잇는 '커넥트윈'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계열사 간 인적 교류와 소통의 기능을 극대화했다. 이는 단순한 공간 변화를 넘어, 계열사의 개별 기술을 하나로 묶는 '원 LG' 전략의 일환이다.

LG는 현재 각 계열사의 강점을 결합해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LG전자의 냉각 기술과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솔루션, 그리고 LG CNS의 운영 역량을 통합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술적 연결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의 협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 구광모 회장은 트윈타워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나 피지컬 AI 및 AI 인프라 분야의 협력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며 미래 시장을 향한 행보를 가속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