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불확실성과 정치적 흐름
최근 3주간 일본에 머물며 현지인들과 대화하고 다양한 서점과 매체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 결과, 2026년 말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뒤섞인 상태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세 가지 주요 의제는 지정학적 위기, 인공지능(AI)의 확산, 그리고 외국인 유입 문제로 압축된다.
우선 지정학적 측면에서 일본은 2020년대의 급격한 정세 변화로 인해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오랜 동맹이자 안보 보증인인 미국의 신뢰도가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대체할 만한 대안 세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예측 불가능하고 충동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는 안정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정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가 중간선거 이후 힘을 잃은 '레임덕' 상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며,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은 트럼프보다 일본을 더 신뢰할 수 있는 동맹으로 대우할 것이라는 기대도 공존한다.
정치권에서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지지율이 최근 50% 미만으로 떨어지며 2025년 10월 집권 당시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음이 드러났다.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라 믿었던 유권자들은 이제 그녀를 과거 방식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지율 하락이 좌우 포퓰리즘으로의 결집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일본은 선진국 중 정치적 양극화가 가장 적은 국가 중 하나이며, 대다수 국민은 정치적 극단주의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와 AI 기술 경쟁
경제적 측면에서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다. 오랜 기간 지속된 저물가 기조가 끝나고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물가 상승에 따른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이로 인해 중산층이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K자형 경제'가 나타나 사회적 화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I 기술에 대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른 도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보 습득원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기대하는 이들도 많다. 미국처럼 AI를 둘러싼 극심한 양극화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나, 개인정보 보호 문제나 AI의 오용 가능성에 대한 광범위한 걱정은 존재한다. 종이 매체나 수기 기록 등 아날로그 문화를 선호하는 일본인들은 AI가 이러한 전통의 쇠퇴를 가속화할 것을 경계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AI 경쟁에서 이웃 국가들에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중국의 기술력에 대한 경계심과 맞물려,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 있는 한국 및 대만과의 기술 협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일본의 기술을 받던 한국과 대만이 이제는 중국에 대응하는 기술 개발의 대등한 파트너로 인식되며 일본의 시각도 변화하고 있다.
외국인 유입과 사회적 통합
마지막으로 외국인 증가 문제 역시 중요한 화두다. 2025년 참의원 선거 이후 자극적인 외국인 관련 이슈에 대한 관심은 줄었으나, 외국인 수용 규모와 사회 통합 방식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일부 매체가 부정적인 보도로 클릭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일본인은 고령화 사회의 경제적 필요성에 따라 외국인 거주자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외국인 그 자체보다 급격한 유입 속도에 대한 우려로 보인다.
관광객의 유입 또한 지역 경제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를 예로 들면, 외국인 관광객들은 쇠퇴하던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외국인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상점과 식당에는 영어 등 다양한 언어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20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결론적으로 2026년 말 일본의 분위기는 '관망세'로 정의할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일본의 특성상, 21세기 중반을 향한 국가적 방향성에 대한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확한 합의가 도출될 때까지 일본은 격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신중하게 상황을 지켜보는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