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부실 대응 체계 전면 개편
금융기관이 경영 위기에 직면했을 때 예금주들이 수개월 동안 자금을 인출하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부실 금융사를 단 3~4일 만에 정리하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다. 금융위원회는 29일 '금융회사 신속정리제도'를 골자로 한 방안을 공개하며, 금융산업구조개선법과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다음 달 2일부터 12월 14일까지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개정안은 향후 규제 심사와 국무회의 단계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해당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23년부터 외부 전문가와 관계기관이 협력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를 지속해 왔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부실 징후를 발견한 시점부터 실제 정리에 이르기까지 보통 150일 정도의 긴 시간이 소요된다. 이는 당국의 시정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도 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비로소 정리가 시작되는 단계적 절차를 따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경쟁입찰 과정과 사전 통지, 주주총회 개최 등 복잡한 법적 절차를 모두 준수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지연 기간 중 영업이 정지되면 예금자는 본인의 자산을 찾을 수 없게 되며, 정리 비용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실제로 과거 저축은행 사태 당시 30개사의 부실 규모는 부실 결정 이후 약 1.2배가 증가하며 3조 9000억 원에 달했다.
신속정리제도 적용 대상과 발동 요건
새로운 제도의 적용을 받는 대상에는 예금보험기금의 지원이 가능한 은행(농협·수협 제외), 보험사(재보험 제외), 증권사, 저축은행, 그리고 금융지주회사가 포함된다. 다만 모든 부실 금융사가 대상은 아니며, 부실 혹은 부실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금융 위기나 시장의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고, 적기 시정조치와 같은 일반적인 처분만으로는 사태를 막기 어려운 긴급한 상황에서만 이 제도가 발동된다. 결정권은 금융위원회에 있으며,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한국은행이 참여하는 위원회에서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향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당 요건 충족 여부를 사전에 검토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신속한 자산 이전과 권리 보호 대책
신속정리 대상으로 지정되면 금융당국은 관리인 선임, 영업정지, 계약이전, 제3자 인수, 감자, 인허가 취소 등 다양한 정리 방식 중 적절한 수단을 선택할 수 있다. 기존의 경쟁입찰 방식 대신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며, 사전 통지나 주주총회 결의,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등의 절차도 생략이 가능하다. 자산과 부채에 대한 실사는 예금보험공사가 1~2일 내에 잠정적으로 평가한 뒤 추후 확정 실사를 진행한다. 파생상품 거래의 조기 종결은 최대 2영업일 동안만 중단되며, 주말을 활용해 인수자를 확정하고 예금을 이전하는 방식도 허용된다. 이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당시 미국이 4일 만에 가교은행을 통해 예금을 전액 이전하고, 영국이 3일 만에 HSBC에 SVB 영국법인을 매각한 사례를 참고한 것이다.
금융위는 그간의 국내 제도가 사전 위기 대응과 유동성 지원에 치중되어 있어 이러한 신속한 대응이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다만 주주와 채권자의 권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완책도 마련했다. 만약 신속정리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이 일반적인 청산이나 파산 시보다 더 크게 나타날 경우, 외부 기관의 정산 실사를 거쳐 그 차액을 예금보험기금에서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또한 금융위원회는 처분이 완료된 후 6개월 이내에 정리 과정과 최종 결과를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