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준한 지형 뚫고 계단 오르는 로봇개, 공공기관 눈길 사로잡아

체중이 40kg을 상회하는 4족 보행 로봇이 불규칙한 높낮이의 계단을 능숙하게 극복하며 시연을 펼쳤다. 몸을 낮춰 포복 자세로 빠르게 이동하거나, 뒤집힌 상태에서도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서는 로봇의 모습은 현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열화상 카메라와 가스 및 음향 감지 장비를 갖춘 일부 로봇은 최대 100kg의 하중을 견디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성능을 보였다. 이를 지켜본 국방부와 소방청, 농림축산식품부 등 주요 정부 기관 및 국방과학연구소 관계자들은 로봇의 구체적인 활용 방식과 성능에 대해 심도 있는 질문을 이어갔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강남구 세텍(SETEC)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4족 로봇 제품 설명회'가 개최됐다. 이번 행사는 공공 부문에 투입될 최적의 4족 보행 로봇을 선정하기 위해 정부 부처와 국내 로봇 제조 기업들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였다. 지난 9월 정부가 내년부터 인공지능(AI) 로봇 1700여 대를 공공 영역에 우선적으로 보급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후속 조치로, 수요처인 정부와 공급처인 기업을 연결하는 일종의 '로봇 취업 박람회' 성격을 띠고 있다.

국방·소방·산업 현장 겨냥한 로봇 기술 경쟁 가속화

이번 설명회에는 레인보우로보틱스, 라이온로보틱스, 에이딘로보틱스, 오픈패스로보틱스 등 총 5개의 기업이 참여해 기술력을 선보였다. 참여 기업들은 자사 로봇의 성능을 직접 시연한 후, 정부 관계자들과 1대1 상담을 진행하며 각 기관이 요구하는 기능과 예상 도입 규모, 소요 비용, 현장 실증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특히 과거 국방 분야 중심의 로봇 전시와 달리, 소방과 공항, 산업단지 등 다양한 공공 영역의 관계자들이 모인 이례적인 자리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각 기관의 로봇 활용 계획도 구체적이다. 국방부와 육군은 위험 지역의 정찰 및 부대 외곽 경계 업무를, 소방청은 재난 현장의 위험 요소 식별과 실종자 수색을 검토하고 있다. 공항에서는 주요 시설의 경계와 점검을, 산업단지에서는 가스 누출 감시와 설비 점검에 로봇개를 투입할 방침이다. 삼성전자가 대주주인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험지에서도 균형을 잡고 스스로 일어서는 로봇을 선보였으며, 카이스트 출신 연구진이 설립한 라이온로보틱스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며 장거리 이동력을 증명한 '라이보' 계열 모델을 소개했다. 에이딘로보틱스는 독자적인 센서 및 제어 기술이 적용된 로봇을, 오픈패스로보틱스는 산업 시설 점검용 '아리스'를, 그리고 한 업체는 미국 고스트로보틱스의 군용 정찰 로봇 '비전60'을 내세워 경쟁을 벌였다.

2030년 20만 대 보급 목표… 실전 배치 위한 과제는

정부는 내년 공공 부문에 4족 보행 로봇을 포함한 AI 로봇 1700여 대를 우선적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나아가 민간 영역까지 범위를 넓혀 2030년까지 총 20만 대의 로봇 보급을 달성한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정부가 먼저 로봇을 도입해 운용 사례를 구축하고,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기업에 환류함으로써 기술 고도화와 새로운 수요 창출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기관별 예산 편성이나 구체적인 도입 일정이 확정되지 않아 실제 보급 규모는 유동적이다. 이에 정부는 올해 말까지 부품 공급과 데이터 활용, 하자 보수 지침을 담은 공공 보급 가이드라인을 수립할 예정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로봇의 실전 배치 전 추가적인 검증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시연이 이루어진 약 280㎡(85평) 규모의 공간은 계단 오르기나 평지 달리기, 물구나무서기 등을 테스트하기에는 적합했으나, 실제 군부대의 험준한 지형이나 화재 및 붕괴가 발생한 재난 현장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국내 로봇 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영상으로 기술력을 입증했더라도, 실제 공공 현장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장시간 운행 시의 배터리 효율, 악천후 대응력, 통신 단절 시의 작동 안정성 등을 현장에서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