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 국가미래전략연구위원회와 한국일보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기획 시리즈다.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미래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AI 도우미가 바꾼 상담 현장의 생산성

한 기업은 약 5,000명의 고객상담원에게 인공지능(AI) 보조 시스템을 도입했다. 숙련된 상담원들의 대화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질문에 최적화된 답변을 실시간으로 제안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신입 및 저숙련 상담원의 업무 효율은 34% 향상되었으며, AI의 도움을 받은 신입 사원은 단 두 달 만에 AI 없이 반년 이상 근무한 숙련자와 맞먹는 성과를 냈다. 베테랑의 노하우가 AI를 통해 신입에게 즉각적으로 전달된 결과다.

이러한 변화는 채용 시장에 양면성을 던진다. 신입의 업무 적응 기간이 단축된 만큼 채용을 늘릴 수도 있지만, 소수의 경력자와 AI의 조합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해 채용 규모를 축소할 수도 있다. 실제 노동시장에서는 후자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전체 고용 규모에서 AI로 인한 급격한 감소는 아직 뚜렷하지 않으나, AI 노출도가 높은 직종에서는 청년층 고용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기술 진보가 연공서열 중심의 구조를 강화하는 '연공편향형'으로 나타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만 해고는 통계에 명확히 기록되지만, 채용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은 통계상 포착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초급 업무의 자동화와 미래 전문가의 공백

흔히 AI 시대에는 'AI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상담 업무의 사례처럼 AI는 업무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 방식을 바꾼다. 문제는 신입 사원이 업무를 익히는 과정이다. 대개 신입은 자료 조사, 도표 작성, 보고서 초안 작성 등 기초적인 업무를 수행하며 팀장의 피드백을 통해 실무를 배운다. 그러나 AI가 이러한 초급 과업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신입 채용이 줄어들 경우 미래의 팀장과 전문가를 양성할 인적 자원의 공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

P&G의 연구개발 및 사업 담당자 791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를 활용한 한 명의 제안서가 AI 없이 협업한 두 명의 제안서와 대등한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AI가 사람을 대체하기보다, 한 명의 개인이 전문 분야를 넘어 마케팅이나 사업 트렌드까지 아우르는 더 넓은 영역을 다룰 수 있게 돕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AI가 에이전트 형태로 진화하면 한 사람이 과거 팀 단위로 수행하던 일을 맡을 수도 있다. 업무량과 인원수의 상관관계가 약화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능력 향상은 인원 감축에 쓰일 수도, 새로운 시장 개척에 쓰일 수도 있다.

'숙련'의 시대에서 '능력'의 시대로

AI 노동 대체 논의의 핵심은 일자리 수의 변화를 넘어 '일을 잘하는 기준'의 변화에 있다. 과거의 기준이 주어진 과업을 정확히 수행하는 '숙련'이었다면, 이제는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고 AI와 인간의 역할을 배분하며 결과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업무 흐름은 통찰, 인식, 판단으로 나뉘는데, 생성형 AI는 중간 단계인 '인식'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따라서 무엇을 AI에 맡기고 언제 사람이 개입할지를 결정하는 통찰과 판단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물然而, 기초적인 숙련 역시 중요하다. 코딩을 직접 해본 사람이 AI의 오류를 더 잘 잡아내듯, 기존의 경험은 AI의 결과를 검증하는 토대가 된다. 문제는 인지 비용이 낮아질수록 통찰력을 기를 기회도 줄어든다는 점이다. 신입 연구원이나 개발자는 기초적인 인식 업무를 수행하며 자연스럽게 통찰력을 체득해왔으나, 이 과정이 생략되면 판단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어려워진다.

사회적 투자로서의 신입 채용과 교육의 재설계

기업 입장에서 신입을 직접 교육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며, 교육의 이익이 산업 전체로 퍼지는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시장 논리에만 맡기면 기업들은 경력자나 AI를 선호하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적 지식 축적과 차세대 인재 양성의 위기로 이어진다. 교육 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대학은 AI 결과물을 활용하더라도 그 근거와 변화 가능성을 설명하게 함으로써 비판적 사고를 유도해야 하며, 산학협력과 도제식 훈련을 통해 실무 학습의 통로를 복원해야 한다.

인구 감소 시대에 신입 채용은 단순한 비용이 아닌 10년 뒤의 생산력을 결정하는 투자다. 기업이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업종별 공동 훈련이나 재교육 지원 같은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AI 정책의 성공 여부 역시 투자 규모가 아닌, 얼마나 많은 인력이 AI와 협력하며 새로운 능력을 습득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결국 지금 누구에게 첫 업무를 맡기고 시행착오의 기회를 주느냐가 미래 사회의 판단 능력을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