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지가 결정하는 서울 부동산의 명암
인공지능(AI) 기술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한국 사회의 입시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서울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결정짓는 핵심 동력은 대학의 위치보다 중·고등학교 학군에 더 강력하게 묶여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7세 고시'나 '4세 고시'로 불리는 영어유치원 입학 여부가 주거지 선택의 새로운 기준이 될 만큼 학군 수요는 견고하다.
이러한 현상은 지역별 자산 가치의 차이로 직결된다. 서울대학교가 위치한 관악구 신림동은 여전히 서울 내 빌라 밀집도가 가장 높고 아파트 가격도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연세대학교 인근 신촌은 상권 침체를 겪고 있으며, 고려대학교가 있는 성북구 안암동 일대 역시 상승세 속에서도 큰 변화는 없다. 반면 8학군을 보유한 강남구와 목동 재건축 단지는 높은 시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노원구나 안양 평촌 또한 학군지라는 특수성 덕분에 주변보다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지방 거주자들 사이에서 우수한 중·고교와 학원가 접근성을 위해 은마아파트나 도곡렉슬 같은 대단지에 전세로 거주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 이들 지역의 전세 수요는 매우 탄탄하다.
4만 8천 가구 이주 수요와 강남의 위기
부동산 시장의 잠재적 위험 요소는 대규모 멸실과 이주 수요에서 발생한다. 통계에 따르면 향후 2~3년 내 서울에서 이주가 시작되어 사라질 예정인 가구 수는 총 4만 8249가구에 육박한다. 용산구(8336가구), 관악구(6652가구), 영등포구(6215가구), 송파구(5325가구), 서대문구(5232가구) 등은 인근 자치구로 수요가 분산될 여지가 있다.
그러나 강남구는 이야기가 다르다. 약 4424가구가 거주하는 은마아파트와 1960가구 규모의 개포주공 6·7단지가 이주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강남 학군지의 핵심적인 전·월세 공급처 역할을 해왔다. 대치동 학원가와 휘문중, 대현초 인근은 아파트뿐만 아니라 빌라촌까지 전세 물량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이주 수요는 학군지를 떠나지 못하는 '학군지 난민'을 양산할 것이며, 이는 아파트와 빌라 전셋값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특히 역삼2동처럼 단독·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서민층의 거처가 되어온 지역은 재건축 이주가 시작되면 빌라 전세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 전세가 고갈되면 수요자들이 빌라로 몰려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강북 지역에서도 300만 원 이상의 고액 빌라 전세가 늘고 있는 만큼, 강남구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 제도 개편 없는 주거 불안의 반복
결국 수능시험에서 국어, 영어, 수학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낮아지지 않는 한 강남의 전세 시장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단기적인 공급 확대가 어렵다면 근본적인 수요를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를 물리적으로 옮기는 것이 어렵다면, AI 시대에 맞춰 수능 체제를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미국 대학 방식처럼 수시 학점제를 도입하고 졸업 요건을 강화하는 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빌 게이츠는 생성형 AI가 5년 내 인간 지능을 넘어서고, 20년 내에는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제는 AI 시대에 부합하는 창조적 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제도 변화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내년부터 강남권 빌라 전셋값의 가파른 상승세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연세대 미래부동산개발 최고위과정 책임교수인 최원철 교수는 이러한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