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증거와 그림자 속의 기획자
9월 중순의 차분한 아침, 1호선 신이문역을 지나 약속 장소인 오피스텔로 향했다. 4개월 만의 재회였다. 국회프락치 사건 연구의 독보적 권위자인 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의 저작들을 탐독하며 늘어난 의문은 하나였다. 여성의 몸에서 증거물을 찾아냈다는 그 기상천외하고 외설적인 시나리오의 실체가 무엇인지였다.
서류가 가득한 교수님의 공간은 지난번보다 더 어지러웠다. 지난 방문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갔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이번에는 따뜻한 차를 준비했다. 그러나 연로한 교수님은 인터뷰 내내 음료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허탈함이 밀려왔지만,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오제도가 직접 이 조작을 창작한 것인가요?"
재판부에 제출된 증제1호는 남로당의 암호 문건이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경찰은 남로당 여성 공작원 정재한을 미행하다가 개성 인근 파출소 화장실에서 그녀의 음부에 숨겨진 문건을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언은 전무했다. 정재한을 포함한 당사자들은 재판부의 증인 출석 기각을 거쳐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사형을 당했다. 오제도는 이 과정을 마치 스파이 소설처럼 떠벌렸으나, 김 교수는 이것이 허위이며 별도의 각본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김지웅, 역사 속의 악마적 존재
'김지웅'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이력은 음습했다. 한민당 소속 김준연의 비서로 알려진 그는 아편 밀매와 관동군 스파이 등 불투명한 과거를 가졌다. 공식 기록에는 '정치 브로커'로만 등장할 뿐이지만, 그에 대한 정보가 모일수록 국회프락치 사건의 실체는 더욱 뒤틀린 모습으로 다가왔다. 김 교수는 오제도를 실행자로, 선우종원 검사를 조력자로 규정하며, 그 상위의 기획자로 김준연, 장경근, 김태선을 지목했다. 이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묵인 아래 움직였다.
이들은 1949년 6월 26일 발생한 김구 암살 사건의 배후로 의심받는 '88구락부' 소속이기도 했다. 특히 김지웅은 김구 암살의 시나리오를 쓰고 안두희를 조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1994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산하 조사소위원회 역시 그를 '의혹의 모략꾼'이라 부르며 사건을 계획한 인물로 보고했다. 장경근과 김태선은 반민특위 습격을 지시한 핵심 인물이었으며, 김준연은 동아일보 기고를 통해 소장파 의원들을 '남로당 추종자'로 몰아세우며 사건의 불씨를 당겼다. 이들은 친일 행적을 가진 채 이승만 정권에서 성장했다.
6월 공세와 사라진 목소리들
반민특위가 해체된 후, 노일환과 강욱중 등 소장파 의원들은 프락치 혐의로 투옥되었다. 김구의 서거와 함께 1949년 6월은 '6월 공세'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이들이 제거되자 전쟁의 위기는 고조되었고, 정확히 1년 뒤 전쟁이 발발했다. 김지웅이 '음부 암호 운반설'을 기획했다는 문헌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에 대해, 김 교수는 그가 기록을 남기지 않는 비선 세력이었음을 강조했다. 당시 정부에는 서북청년단 같은 '그림자 정부'가 존재했다.
정경모 선생은 저서 '찢겨진 산하'에서 김지웅의 행적을 정교하게 고발했다. 그는 김지웅이 국방부와 헌병사령부를 드나들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으며, 중국군 장교를 사칭하며 아편 밀매와 스파이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정 선생은 '음문 문서' 사건이 김지웅이 짜놓은 악마적 각본이며, 김태선이 연출하고 오제도가 실행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김지웅이 일본에서 '미즈하라 기요마사'라는 이름으로 비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학계의 시선과 남겨진 질문
역사학자들에게 김지웅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A교수는 정보 부족을, B교수는 정경모 선생의 기록을 신뢰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C교수는 그를 '민족의 암적인 존재'이자 '극우 테러의 중간관리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학계에서 그의 행적을 부정하는 이는 없었다. 특히 C교수는 '음부 암호 운반설'을 유치하고 저열한 허위 가공이라고 일축했다. 인터뷰는 끝났지만, 기록자 그레고리 헨더슨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차갑게 식은 유자차처럼, 역사의 진실은 여전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