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삼성물산 합병의 위법성 부정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부당한 합병이 이루어져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낸 소액주주들이 1심에서 패소했다. 2020년 2월 소송이 시작된 이후 약 6년 8개월 만에 나온 첫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재판장 김석범)는 29일, 삼성물산의 옛 소액 주주 20여 명이 이 회장과 삼성물산, 그리고 당시 이사진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주식을 보유했던 이들은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게 책정되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들은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의 가치는 인위적으로 낮추고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리는 방식으로 합병이 추진되었다고 주장했다.
합병 목적 및 비율 산정의 적정성 인정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절차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이 자산 가치를 높이고 재무 구조를 개선하며 사업 경영을 안정화하려는 경영상 목적을 가지고 합병을 추진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합병의 목적이 오로지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에만 국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합병 비율에 대해서도 자본시장법에 의거해 외부 평가를 거쳐 주식 가치를 기준으로 산정되었음을 확인했다. 재판부는 시장 주가가 의도적으로 조작되었거나 법령에서 금지하는 행위가 개입되었다는 특별한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단순히 자산 규모나 가치 등 특정 지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합병 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사들의 의무 위반 및 주주 평등 원칙 판단
합병의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음에 따라 당시 삼성물산 이사들의 의무 위반 여부도 부정되었다. 재판부는 이사들이 회사의 경영 실적과 재정 상태를 충분히 검토한 뒤 회사의 이익을 위해 합병을 승인했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이해 상충이 발생했거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저버렸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다.
또한 재판부는 주주 평등 원칙이 주주가 회사와의 법률관계에서 보유 주식 수에 따라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정의하며, 이를 서로 다른 회사 간의 주주들 사이까지 확대하여 적용할 수는 없다고 명시했다.
이 사건은 2020년 소 제기 이후 4년이 지난 2024년 2월에야 첫 변론이 진행되었다. 당초 재판부는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기소된 이 회장의 항소심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재판을 잠정 중단했으나, 이후 이 회장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변론이 재개되었다. 이 회장은 해당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된 상태다.
한편, 이번 판결과는 별개로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던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에서는 정부가 패소했다. 정부는 엘리엇의 손해와 정부의 개입 사이 인과관계가 인정됨에 따라 약 1530억 원 규모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