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업계의 불균형한 회복세와 정책적 한계
국내 배터리 셀 제조사들이 실적 개선의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재와 부품을 공급하는 하위 생태계 기업들은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기천 한국배터리산업협회장(포스코퓨처엠 대표이사)은 29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개최된 ‘제6회 배터리 산업의 날’ 기념식 전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와 같은 업계의 냉정한 현실을 진단했다.
엄 회장은 올해 2분기와 3분기를 거치며 셀 업체들의 이익이 발생하고는 있으나, 소재 및 부품 분야 기업들의 적자가 지속되고 있어 산업 전체의 완전한 회복을 논하기에는 이르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수요가 일시적으로 정체되는 ‘캐즘’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의 확대와 유럽 지역의 수요 회복이 일부 제조사의 실적을 뒷받침하고 있지만, 이러한 온기가 공급망 전반으로 퍼지기까지는 추가적인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3분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실적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LG에너지솔루션이 756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삼성SDI가 4078억원의 이익을 기록한 것과 달리, SK온은 80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소재 기업들의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약 70% 급감한 각각 161억원과 198억원 수준으로 전망되며, 엘앤에프 역시 116억~447억원 사이의 영업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실질적 지원책 마련을 위한 협회의 역할
엄 회장은 미국 시장의 캐즘에도 불구하고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인한 ESS 수요 증가가 국내 산업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유럽의 성장세 또한 셀 업체의 수익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셀 3사의 이익이 소재·부품 공급업체로 전이되는 데에는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향후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실적 개선이 확산되기를 기대했다. 그는 업계 회복의 핵심 지표로 출하량과 공장 가동률을 지목했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2~3년 뒤의 실적을 결정지을 수주 물량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추진 중인 국내생산촉진세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적자 기업을 위한 보완책의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현재의 세제 혜택은 법인세 공제 방식이라 납부할 세금이 없는 적자 기업들은 혜택을 즉각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엄 회장은 영세업체를 포함한 많은 회원사가 여전히 적자 상태임을 언급하며, 세액공제 외에도 현금을 직접 환급해 주는 방식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협회가 국회 및 산업통상자원부와 협력하여 적자 기업을 위한 직접 지원 방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내겠다고 약속했다. 정부 또한 업계와 논의하여 연내에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포스코퓨처엠의 수주 전망과 협회 운영 정상화
포스코퓨처엠의 미래 성장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엄 회장은 과거 전기차 프로젝트 중단 사태를 딛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주가 재개되었다고 설명하며, 포스코퓨처엠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체결한 양극재 공급계약 물량이 약 150만톤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추가로 2~3건의 계약을 통해 120만톤을 더 확보할 경우, 총 수주량은 약 270만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이 물량들이 빠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공급되기 시작해, 2028년부터는 판매량과 가동률이 본격적인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엄 회장은 최근 협회 내부에서 제기된 조직 운영 논란에 대해 정면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협회장으로서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회원사를 위해 협회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현재 제3의 기관을 통해 2~3개월간 조직 진단을 진행 중이며, 결과가 나오면 이를 전적으로 수용해 조직 개편과 함께 잘못된 부분을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중 종합 결과가 나올 예정이며, 국정감사와 산업부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해 향후 대응 방안을 설명할 기회를 갖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