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9개월 남긴 라가르드, 전격 사임 발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본래의 8년 임기를 약 9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조기 사임을 결정했다. 프랑스 내 극우 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유럽의 지도자들이 친EU 성향을 지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재임 기간 내에 차기 수장 선출을 마무리하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9일(현지시간) ECB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의 퇴임일은 내년 2월 7일로 확정되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본인이 ECB의 미래를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기관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성취감을 안고 물러난다는 뜻을 전했다. 또한 직원들에게 전달한 서신에서도 ECB가 과거에도 지도부 교체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본연의 임무를 완수해 왔음을 강조하며, 이번 전환기 역시 차질 없이 지나갈 것이라고 격려했다.

조기 사임 배경과 정치적 역학 관계

지난 2019년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의 뒤를 이어 ECB를 이끌어온 라가르드 총재의 당초 임기는 2027년 10월까지였다. 그러나 이번 조기 사임 결정으로 인해 차기 총재를 뽑기 위한 인선 절차는 예정보다 앞당겨지게 됐다.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의장은 성명을 발표하며, 차기 지도부로의 안정적인 전환을 보장하기 위해 후임자 선출 과정을 즉각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라가르드 총재의 조기 사임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마크롱 대통령이 임기 중에 후임자를 확정 짓는다면,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차기 총재 임명에 미칠 정치적 영향력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이러한 총재 교체 시점이 특정 정치 일정에 맞춰 조정되는 현상이 ECB의 독립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기 총재 후보군과 향후 전망

현재 차기 ECB 총재 자리를 놓고는 스페인 출신의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 코스 국제결제은행(BIS) 사무총장과 네덜란드의 클라스 노트 전 중앙은행 총재가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블룸버그가 실시한 경제학자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데 코스가 노트보다 더 유력한 후보로 나타났다. 하지만 2019년 임명 당시처럼 유럽 정상들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예상치 못한 인물이 부상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유럽 정상들은 다가오는 11월과 12월에 예정된 정상회의를 통해 차기 총재 선임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다. 이번 인선 작업은 내년에 임기가 종료되는 ECB 내 주요 고위직들의 후임자 결정 과정과 맞물려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