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게임 제작 도구로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온 국내 게임사들이 이제는 직접 AI 시장의 주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엔씨(NC)가 국내 게임사 중 처음으로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을 선보인 뒤 AI 전문 법인을 설립해 구독형 서비스를 전개하는 가운데, 크래프톤 또한 독자적인 LLM을 발표하며 범용 AI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크래프톤, '라온-1 미니'로 범용 AI 영역 확장
크래프톤이 지난 21일 선보인 '라온-1 미니' 프리뷰 모델은 공개 일주일 만에 AI 모델 공유 플랫폼인 허깅페이스에서 약 2만 2000회(경량화 버전 포함)의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이 모델은 기존의 모델을 추가 학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독자적으로 구축된 300억 개의 매개변수 규모를 가진 LLM이다. 특히 전체 매개변수 중 40억 개만을 가동하는 '전문가 혼합(MoE)' 기법을 적용해 운영 비용의 효율성을 높였다.
크래프톤은 외부 개발자와 기업들이 이 모델을 각자의 서비스에 접목할 수 있도록 무료로 개방했다. 지난 4월 음성 및 이미지 관련 AI 모델 4종을 공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게임 산업의 경계를 넘어선 범용 LLM으로 기술 영역을 넓힌 것이다. 사측은 올해 안에 해당 모델의 정식 버전을 출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엔씨, AI 분사 후 유료 구독 서비스로 성과 창출
국내 게임 업계에서 자체 LLM 개발의 선두주자는 엔씨다. 엔씨는 이미 2023년 8월에 국내 게임사 중 최초로 LLM '바르코'를 공개했으며, 이를 아마존웹서비스(AWS)를 통해 외부 기업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지난해 2월에는 AI 사업 부문을 'NC AI'로 분사하며 기술력을 유료 서비스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작년 12월에는 텍스트나 이미지를 기반으로 3D 모델을 생성하는 '바르코 3D'를 선보였고, 올해 9월에는 배경음과 효과음을 제작하는 '바르코 사운드'를 정식으로 출시하며 모두 유료 구독 모델로 운영 중이다.
NC AI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동안 '바르코 3D'의 신규 구독자 수는 이전 3주간의 주간 평균치와 비교해 약 300%가량 급증했다. 이러한 성장은 국내외 인플루언서들의 활용 영상 공유와 적극적인 프로모션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단순히 독자 모델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사업화 단계에서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엔씨는 내년 상반기 중 모델 구조와 3D 생성 품질을 한층 높인 '바르코 3D 3.0'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KT가 주도하는 '모두의 AI' 컨소시엄에 합류하여 이미지를 3D 모델로 변환하고 이를 실제 3D 프린팅까지 연결하는 기술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다.
넥슨·넷마블의 효율화 전략과 전문가 제언
반면 넥슨과 넷마블은 AI를 통한 제작 효율성 제고와 이용자 경험 개선에 주력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넥슨은 지난 6월 게임 제작 플랫폼인 '메이플스토리 월드'에 최적화된 '단풍' LLM을 공개했으며, 9월에는 '마비노기 모바일'에 외부 AI가 캐릭터의 행동을 수행하는 'AI 커넥터'를 시범적으로 도입했다. 넷마블은 LLM과 AI 에이전트 분야의 권위자인 김재일 박사를 AI전략실장으로 영입하며 전문성을 강화했다. 현재 이들은 게임 플레이 중 오류를 탐지하는 AI 에이전트와 캐릭터 음성 생성 기술 등을 연구 중이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임사들의 이러한 독자적 AI 개발 행보를 두고 "AI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의 전면적인 경쟁보다는, 콘텐츠와 게임의 특수성에 최적화된 언어모델을 우선적으로 개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