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정의와 실제 삶의 괴리
사전적 의미로 '세속적'이라는 표현은 세상의 통상적인 풍속을 따른다는 뜻을 지닌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 단어를 이토록 무미건조하게 사용하는 사례는 드물다. 우리는 모두 속세에 발을 붙이고 생존하고 있기에 본질적으로 세속적일 수밖에 없지만, 대중은 대개 돈이나 권력, 명예, 혹은 출세와 이해타산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태도를 가리켜 '세속적'이라고 칭한다.
가짜 꽃으로 꾸며낸 내면의 기둥
김진해 경희대 교수는 스스로도 세속적인 존재임을 고백한다. 다만 그는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기보다 고상한 척하며 자신을 포장하는 방식을 택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속물적인 욕망으로 다져진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둔 채, 그 위에 직업적인 미소나 선택적 연민, 고상한 명분이라는 가짜 꽃들을 꽂아두고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러한 위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자평한다.
일상 속에 침투한 쪼잔한 욕망들
세속적인 본성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마다 모습을 드러낸다. 지인이 베스트셀러를 냈을 때 인세 규모를 궁금해하거나, 타인을 만날 때 나에게 돌아올 이득을 먼저 계산하는 행태가 그러하다. 거주지가 개인을 대변한다는 말에 집 외벽의 균열을 살피며 위축되기도 하고, 식당에서 음식의 맛보다는 결제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따지는 쪼잔함도 나타난다. 타인의 뛰어난 언변에 질투를 느끼거나, 늦은 밤 퇴근하는 자신에게 왜 이토록 일하느냐고 물었을 때 출세욕이라는 답이 돌아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직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
조직의 한계를 마주할 때마다 떠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으면서도, 정작 조직이 제공하는 혜능은 빠짐없이 누리는 이중성도 존재한다. 퇴사를 언급함으로써 마치 조직의 문제에 책임이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만, 실제로는 떠나지 않은 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청렴한 사람인 양 자신을 속인다. 결국 내면은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며, 그중에서도 스스로를 세속적이지 않다고 믿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세속적인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