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동물과 닮은 거미의 수면 체계
거미 또한 인간처럼 수면 과정을 거치며, 수면이 부족할 경우 이를 보충하려는 생리적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 본대학교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를 통해 이와 같은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행동생태학자 나디아 가이거와 다니엘라 뢰슬러는 거미의 수면 조절 방식과 구조가 척추동물의 수면 양상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에 주목하며 놀라움을 표했다.
깡충거미에서 발견된 렘수면의 흔적
연구진은 지난 2022년, 깡충거미의 일종인 ‘에바르차 아르쿠아타’가 렘수면과 유사한 상태에 진입하는 것을 포착한 바 있다. 거미는 눈꺼풀이 없어 안구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까다롭지만, 시선을 이동할 때 망막을 움직이는 깡충거미의 특성을 활용해 연구를 진행했다. 적외선 카메라를 통한 관찰 결과, 실험 대상들은 밤마다 거꾸로 매달린 채 약 80초간 망막과 다리를 움직였으며, 이는 15~20분 간격으로 반복되었다. 이러한 신체 움직임은 뇌 활동이 활발해지는 포유류의 렘수면과 매우 유사했으나, 당시에는 해당 거미가 실제 잠든 상태였는지까지는 확언하지 못했다.
수면 방해 후 나타난 80%의 반동 현상
후속 연구를 위해 연구진은 높은 기억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춘 ‘포르티아 핌브리아타’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호주와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는 이 거미는 야간에 특정 휴식 자세를 취하며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이 낮아지는 특징을 보였고, 입 주변의 떨림이나 사지 경련, 망막 움직임 같은 렘수면 유사 행동을 주기적으로 나타냈다. 연구진은 거미의 수면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밤사이 사육장에 초파리 25마리를 투입했다. 그 결과, 수면을 방해받은 다음 날 밤에 나타난 렘수면 유사 행동 시간은 방해받지 않은 날보다 약 80%나 급증했다.
무척추동물 최초의 렘수면 반동 확인
수면 부족 이후 렘수면이 늘어나는 이 현상은 ‘렘수면 반동’이라 불린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거미가 실제로 수면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설명하며, 무척추동물에게서 이러한 반동 현상이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연구의 의의를 강조했다. 비록 거미가 실제로 꿈을 꾸는지 혹은 이 단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연구진은 뛰어난 인지 능력을 가진 이 거미의 수면 단계가 학습과 기억의 고착화에 기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번 연구는 신경 구조가 다른 무척추동물에서도 수면 조절의 유사성이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수면의 진화적 기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