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따라 변하는 공직 가치: '목민'에서 '동료 시민'으로
경기도 공직사회가 과거의 무조건적인 헌신이나 일방적인 책임 중심의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신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상호 존중과 합리적인 책임 분담을 새로운 공직 가치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이다.
경기연구원은 29일 발표한 ‘공직가치의 진화: 수직적 책임에서 수평적 연대로’ 보고서를 통해, 광복 이후 우리 사회의 변천사와 경기도 지방자치의 발전사를 짚어보며 미래 공직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정표를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의 공직 가치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목민의 시대’와 ‘경영의 시대’, ‘공복의 시대’를 거쳐 현재 ‘동료 시민의 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 있다.
과거 민선 지방자치가 도입되기 전에는 주민을 보살피고 이끄는 리더로서의 역할이 주를 이루었다. 이후 1995년 지방자치 제도가 부활하면서 주민을 서비스의 고객으로 간주하고 행정의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는 경영 중심의 흐름이 나타났다. 이후 도민을 주인으로 모시는 공복의 시대를 지나, 2020년대에 접어들면서 도민과 공직자를 대등한 관계로 바라보며 상호 존중을 토대로 협력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이다.
MZ세대 공무원 인식 변화와 공직 사회의 위기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실제 공직자들의 인식 변화로도 증명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무원 중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직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22년 45.2%를 기록해 전년도 33.5%보다 11.7%포인트 급증했다. 또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의 2022년 조사에서는 MZ세대 공무원 10명 중 8명이 스스로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직장인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대의 공직사회에서 공익 실현이나 직업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 공정한 보상 체계, 그리고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 등이 매우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음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공직자의 역할을 단순한 민원 처리나 상급자의 지시 이행에 국한하지 말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도민과 함께 정책을 설계하는 주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타운홀 미팅, 주민참여예산, 공론화 과정 등을 통해 도민이 정책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성 강화와 제도적 책임 체계 구축 과제
경기연구원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핵심 과제로 공직자의 전문성 제고, 도민과 공직자 간 상호 존중의 제도화, 그리고 합리적인 책임 체계 마련을 꼽았다. 우선 임용 초기 단계부터 체계적인 경력 경로를 설계하고,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해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함으로써 공직자들이 현장 대응과 이해관계 조정 업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도민과 공직자가 서로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관리자급 인사가 일방적인 감독에서 벗어나 실무를 깊이 이해하며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공직자 개인의 인내심에만 의존해왔던 기존의 책임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폭언이나 폭행 같은 위법 행위가 발생했을 때 개인이 홀로 대응하게 두지 말고, 기관 차원의 원칙 있는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경기도와 31개 시군이 공통된 민원 응대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재호 경기연구원 자치혁신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도민을 동료 시민으로 대우하기 위해서는 공직자 역시 존중받는 동료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공직자의 전문성을 높이고 민관 간의 상호 존중을 제도적 틀 안에 담아내는 한편, 개인의 인내에 기대지 않는 책임 체계를 확립해야만 도민의 만족도와 공직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