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청년들의 시간과 심화되는 고용 불평등
15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층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47개월 연속으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고용률 또한 29개월간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부 청년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배달이나 택배 같은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으나, 이러한 경험이 원하는 직종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취업 준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줄여야 하는 상황과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늘려야 하는 상황이 충돌하면서, 오늘을 버티기 위한 노력이 내일을 준비할 시간을 잠식하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8월 실시된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38.5%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정규직과의 월평균 임금 격차 역시 194만 원까지 벌어진 상태다. 이러한 경제적 격차는 부모의 재력에 따라 양질의 일자리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조차 결정짓는 결과를 초래한다. 누군가는 경제적 여유 속에 준비하며 기회를 기다리지만, 누군가는 당장의 생계 문제로 인해 준비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즉, 출발선에서의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 안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조차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채용 위축의 근본 원인
청년 고용 위기를 단순히 저성장 기조나 기술적 변화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 이면에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존재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연공급제와 장기 고용을 통해 보호받는 반면, 중소기업 종사자나 비정규직은 빈번한 이직과 경력 단절의 위험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노동 시장의 이동 장벽이다. 외부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고 전문적인 훈련을 거치더라도, 양질의 일자리 내부로 진입하는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기업 측면에서는 정책적 의도와 달리 비용과 위험을 우선적으로 계산하게 된다. 임금 체계나 직무, 인력 구조를 조정하는 것이 까다로울수록 기업은 채용을 미루려는 유인이 커진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신입 사원의 업무 영역까지 대체하게 되면 이러한 채용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될 수 있다. 해고 시에는 공식적인 통지서라도 전달되지만, 사라져 버린 채용 기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통보조차 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유연안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개혁 과제
기업이 적극적으로 채용에 나서게 하려면 기존의 고용보호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내부 조정의 유연성을 높이면서도 외부 안전망을 강화하는 '유연안정성(flexicurity)' 모델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연공급 중심의 임금 체계를 직무와 숙련 중심으로 개편하고, 유연한 인력 재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또한 단체교섭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여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OECD는 '한국경제보고서 2022'를 통해 불확실하고 엄격한 해고 절차와 높은 종료 비용이 기업의 청년 정규직 채용을 위축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독일의 경우, 부당해고라 할지라도 근로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면 법원이 금전 보상과 함께 관계 종료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도 노동위원회의 판단 아래 엄격한 요건을 갖춘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만큼 전직 지원과 실업급여 제도의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와 정부의 역할
단순히 청년들에게 더 많은 훈련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업이 신규 채용을 확대하고, 중소기업에서의 경력이 타 기업에서도 온전히 인정받는 구조적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저소득층 청년들에게는 구직과 훈련 기간 동안 생계비와 주거비를 국가가 지원함으로써, 부모의 경제력 대신 제도가 그들의 버티는 시간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과 이동을 저해하는 구조적 문제를 핵심 의제로 설정해야 한다. 임금과 직무,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안전망을 강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진정한 사회적 대화는 단순히 대화의 자리를 갖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화의 울타리 밖에 있는 이들의 기회까지 확장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노조의 반발을 우려해 개혁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기업이 규제 완화만을 요구하고 노조가 재직자 보호에만 매몰된다면 청년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청년들에게 더 빨리 뛰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뛰는 만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정한 노동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