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AI 범죄와 통계 부재의 현실
사용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악용한 신종 범죄가 급증하고 수법 또한 정교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치안 체계는 이러한 AI 기반 범죄를 별도로 분류하거나 통계를 관리하는 기능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에 정부가 AI 기술을 이용한 범죄의 확산 속도에 맞서 과학적인 치안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국가 전략 수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26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발주한 'AI 시대 신종범죄 대응 과학치안체계 구축 및 국가전략 수립 연구' 용역은 지난 2월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이하 국가AI전략위)가 공표한 '대한민국 AI 행동계획'의 후속 조치로서 추진된다. 국가AI전략위는 해당 계획을 통해 AI의 확산이 사회 안전과 국가적 신뢰를 위협하는 새로운 국면을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딥페이크를 활용한 이미지·음성 합성, 보이스피싱, 스푸핑, 사기 봇, 신원 도용, 허위 정보의 자동 생성 등은 기존의 수사 체계와 법 제도를 압도하는 규모와 속도로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 기술 범죄를 넘어 국가 안보와 시민권 보호를 위협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약계층 위협하는 AI 범죄의 심각성
실제 수사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딥페이크 성착취물은 약 1,500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사이버 성폭력 범죄의 35%를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비중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안 당국은 AI를 활용한 범죄를 별도의 통계로 관리하지 못한 채 일반적인 사이버 성범죄의 한 유형으로만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고도의 기술 없이도 누구나 AI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피해가 급격히 확산된다는 점을 들어, 별도의 범죄 분류 체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보이스피싱이 고령층에게 큰 피해를 입혔듯, 신기술 범죄 역시 아동, 청소년, 여성, 노약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집중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범정부 차원의 전주기 대응 체계 구축
국가AI전략위의 권고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6월 'AI 범죄대응 범부처협의체'를 구성하고 'AI 범죄근절 종합대응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국가AI전략위는 금융 범죄와 딥페이크 기반 성범죄, 개인정보 침해, 불법 자금 유통 등 각 영역별로 관련 부처들이 맞춤형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연구 용역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며, 범죄 유형별 발생 현황과 취약계층의 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기술 악용 원리와 시나리오를 분석하여 '예방-수사-피해자 보호 및 지원'으로 이어지는 전주기적 대응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경찰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2027년 2월까지 연구를 완료하고 이를 토대로 국가 차원의 AI 범죄 대응 전략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에는 경찰청, 여성가족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여러 부처 간의 모호한 경계를 정리하고 책임의 공백을 없애는 작업도 포함되었다. 특히 대규모 개인정보 침해나 금융권 해킹 같은 중대 범죄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가AI전략위의 계획에 따라 10여 개 부처가 협력하고 있으며, AI 범죄의 정의부터 예방, 피해자 보호까지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 범죄의 속도를 제도와 수사력이 따라잡지 못하면 국민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실효성 있는 후속 대책과 연구·개발 투자를 위한 관계 부처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