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마저 만연한 '쪼개기 계약'의 실태
법과 원칙을 준수하며 노동 현장의 모범이 되어야 할 공공기관과 산업계가 오히려 탈법과 편법이 판치는 장소가 된 지 오래다. 퇴직금 지급 의무를 피하기 위해 계약 기간을 11개월로 끊거나, 무기계약직 전환 직전인 1년 11개월 시점에 계약을 해지하는 이른바 '꼼수계약'이 민간을 넘어 공공 영역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이러한 기만적 행태는 갈수록 교묘해지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비용 절감이나 실적 달성을 핑계로 공공부문이 이러한 계약 쪼개기를 일삼는다면, 민간 기업에 법 준수를 요구할 도덕적 명분은 사라진다. 국가의 노동 정책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탈법 관행을 먼저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가 최근 1년 미만 기간제 노동자를 위해 고용 불안을 보상할 '공정수당'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이는 왜곡된 고용 구조를 방치한 채 금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정부의 우선 과제는 수당 신설이 아니라 현장의 꼼수계약을 철저히 조사하고 엄단하는 것이다.
안전관리자마저 위협하는 불안정한 고용 구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11개월 혹은 1년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해지하는 수법은 고용 불안을 고착화하는 핵심 원인이다. 예산과 인력을 엄격히 관리받아야 할 지자체와 공공기관조차 비정규직의 상시적 불안을 양산하며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노동자를 단순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반인권적 행태이자 명백한 '노동 도둑질'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러한 편법 계약이 단순 사무직을 넘어 현장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 및 보건관리자 등 핵심 전문 인력에게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15일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통해 중대재해를 줄이고 사망 사고를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장의 실상은 다르다. 건설 현장의 안전과 보건을 책임질 실무자들 중 상당수가 불안정한 계약직 신분이다. 고용이 위태로운 안전·보건관리자가 경영진의 무리한 공기 단축 지시나 안전 수칙 위반에 대해 소신 있게 목소리를 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비용 절감과 공기 준수만을 강조하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전문 인력을 쪼개기 계약으로 채우는 한 청년 고용의 질 향상과 안전 확보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노동 적폐 청산을 위한 고강도 대책 촉구
진정한 노동 존중 사회로 나아가는 길은 화려한 수당 정책이 아니라 현장의 파렴치한 꼼수계약을 완전히 뿌리 뽑는 데 있다. 정부는 공정수당이라는 이름 뒤에 숨지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 우선 공공부문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단기 계약 실태를 재조사하여 상시 업무에 대해서는 정규직 전환을 의무화하고, 특히 안전·보건 직무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해 현장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법 위반 기관장에게는 엄중한 인사 및 재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한 안전·보건관리자의 고용 안정을 뒷받침할 제도적 정비가 병행되어야 한다. 사업장 내 전문 인력의 고용 형태를 상시 감시하고, 부당한 계약 갱신 거부 등을 감독할 특별근로감독 체계를 상시 가동해야 한다. 아울러 쪼개기 계약을 근로기준법 위반 및 탈법 행위로 간주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무리한 공기 단축을 방지할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공정수당 논의에 앞서 공공기관의 자성과 함께 꼼수계약의 고리를 끊고, 안전 인력의 고용을 안정시키는 것이야말로 노동 적폐를 청산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