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고리 3·4호기, 다시 돌아가는 원전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원전 3호기와 4호기의 운전 기간이 10년 더 늘어났다. 당초 설계수명인 40년을 채우고 지난해와 2024년에 걸쳐 가동이 중단되었던 이 원전들이 다시 가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향후 원전 7기에 대해서도 계속 운전 허가 절차를 밟으며 추가적인 수명 연장을 검토할 방침이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로 전력 수급을 안정화하고 전기요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반복될 상황을 고려할 때, 정책이 시행되기 전 반드시 해결되었어야 할 선결 과제들을 방치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특히 원전이 밀집된 동남권 지역에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혜택은 불투명, 지역적 비용은 확정적

노후 원전의 가동 기간을 늘리는 핵심 명분은 전기요금 부담을 낮추는 데 있다. 하지만 원전 가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지역 사회에 즉각적이고 확정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요금 인하에 따른 편익은 체감하기 어렵다는 불균형이 존재한다. 원전 밀집 지역인 동남권에서는 그동안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도입해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수도권이 기피하는 원전 인근에 거주하며 발생하는 비용을 지역이 떠안는 것에 대한 정당한 요구였으나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정부는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라는 명칭을 '산업용 지역 전기 요금제'로 변경하며 10% 미만의 산업용 요금 인하만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핵폐기물 포화 위기와 부지 선정의 부재

원전 인근 지역이 느끼는 불안감의 또 다른 핵심은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다. 고리원전의 사례만 보더라도 원전 내 습식저장시설의 저장률은 올해 기준으로 이미 93%를 넘어선 상태다. 보수적인 관점에서 예측하더라도 2032년경에는 저장 시설이 완전히 포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러한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핵폐기물을 영구적으로 격리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부지 선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고리 3·4호기의 가동을 연장하는 것은 핵폐기물 포화 시점을 앞당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영구 처분시설 마련이 지연된다면 원전이 사실상 영구적인 핵폐기장으로 전락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 합의 없는 일방적 정책의 위험성

최근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 과정에서 불거진 전기 공급 이슈는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이 단순히 특정 지역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위험 요소만을 특정 지역에 집중시켜 온 기존의 원전 정책 기조가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점이 문제다. 핵폐기물 처리 방안이나 지역별 차등 요금제와 같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은 채 추진되는 원전 연장은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연장을 승인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기술적 안전성만을 근거로 내세울지 모르나, 그것이 정부의 정책적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는 결국 지역 간 차별론을 심화시키는 토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