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단추' 끼우기 힘든 청년 노동시장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삼은 청년 10명 중 9명은 1년이 지나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도체 중심의 경제 성장이 정작 청년들의 고용 창출로 연결되지 못하는 데다, 인공지능(AI) 기술이 확산하며 기업들이 신입보다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진 결과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청년고용 부진 및 정책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의 청년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기업 입사를 희망했던 미취업 청년의 87.9%가 1년 이내에 대기업 상용직과 같은 1차 노동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이들 중 60.0%는 실업 상태를 유지하거나 비경제활동 인구로 남았으며, 27.8%는 중소기업이나 임시·일용직 등 2차 노동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반면 1차 노동시장 안착에 성공한 비율은 12.1%에 불과했다. 특히 취업 경험이 전무한 청년의 경우 1차 시장 진입 성공률은 11.1%로 더 낮게 나타났으며, 이들 중 66.7%는 실업 또는 비경제활동 상태에 머물렀다.
경력직 선호와 고용의 질 악화
기업들의 경력직 중심 채용 기조도 수치로 확인됐다.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한 25~29세 청년 1,000명당 첫 직장으로 상용직에 입직하는 인원은 2014~2019년 평균 48명이었으나, 2023~2026년에는 45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경력을 보유한 입직자는 같은 기간 102명에서 121명으로 늘어났다. 핵심 연령층인 30~59세와 비교했을 때 청년층의 상대적인 상용직 입직 규모 역시 약 15~20%가량 축소된 것으로 추산된다.
청년층의 고용 지표는 질적인 측면에서 더욱 악화하는 추세다. 15~29세 청년 실업률은 2022년 6.4%에서 올해 1~9월 기준 6.6%로 소폭 상승했으며, 고용률은 46.6%에서 43.7%로 2.9%포인트 하락했다. 다만 과거 2014~2019년 평균 실업률인 9.4%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취업자 중 임시·일용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약 31%에서 올해 약 33%로 확대되어 고용 안정성이 떨어졌다. 이에 따라 고용의 질 지수도 하락했다. 대기업 및 공공기관 취업을 희망하는 비율은 2014~2019년 약 58%에서 2023~2024년 약 54%로 감소한 반면, 중소기업을 희망하는 비중은 약 40%에서 43%로 증가했다.
산업구조 재편과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영향
한국은행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산업구조의 재편과 AI의 확산을 지목했다.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IT 제조업은 상용직 고용 창출력이 낮은 반면, 채용 수요가 많은 비IT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성장세는 상대적으로 저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AI 도입이 가속화되면서 초급 및 기초 업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역시 청년 고용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 고용 안정성이 높은 1차 노동시장은 기존 인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며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반면, 2차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로 이동하기는 매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1차 노동시장 내 기존 일자리 유지 비율은 높아졌으나, 외부로부터의 진입이나 2차 시장에서의 이동 비율은 하락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2차 노동시장에서 1차 시장으로 이동한 청년 비율이 2014~2019년 8%대에서 2023~2024년 5%대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가 고착화될 경우 경기 회복기에도 청년 고용 개선이 뒤늦게 나타나는 '이력현상(Hysteresis)'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연구진은 산업정책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병행을 제안했다. 반도체 산업의 성과가 서비스업 등 연관 분야로 퍼지도록 유도하고, AI 시대의 직무 요구에 맞춰 교육과 산업 간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 진입 및 이동 문턱을 낮추기 위해 고용 제도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성엽 한은 고용동향팀장은 제도적 과잉 보호가 노동시장 효율성을 저해하며 그 부담이 청년에게 쏠릴 수 있다고 언급하며, 노동시장 경직성이 완화되어야 1차 시장의 수요가 확대되어 청년 고용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