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가치 뒤에 가려진 노동권의 사각지대

인간의 생애 주기에서 돌봄은 피할 수 없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태어나 성장하는 시기부터 질병과 노화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돌봄은 개인의 삶을 유지하고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된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며 돌봄은 이제 국가의 핵심적인 '필수 노동'으로 자리 잡았으나, 정작 우리 사회는 돌봄을 수행하는 주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소홀하다.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높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돌봄 노동자들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하고도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존재한다. 9년 차 요양보호사 이은복 씨는 환자로부터 추행을 당했을 때, 대응을 하면 노인 학대 가해자로 몰리거나 혹은 성추행 피해자로 남아야 하는 두 가지 선택지뿐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성별화된 노동 구조는 돌봄을 전문적인 기술직이 아닌 여성의 헌신과 봉사로 치부하게 만들며, 이는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이어진다. 국책 연구기관은 향후 20년 내 요양보호사가 약 99만 명 부족해질 것으로 내다봤으나, 국가 책임 강화 대신 민간에 의존하는 '돌봄의 외주화'가 심화되면서 양질의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급증하는 비정규직과 낮은 임금의 굴레

데이터로 나타난 돌봄 노동의 현실은 더욱 열악하다. 국가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이후 증가한 비정규직 노동자 4명 중 3명이 보건 및 사회복지업 종사자였다. 고령화로 인해 돌봄 수요는 매년 확대되고 있지만, 지난 7년간 늘어난 일자리의 74%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70만 명에 달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월 평균 임금은 지난해 기준 127만 3,000원에 불과해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향신문은 '세계 돌봄의 날'을 맞아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요양보호사, 간병사, 특수교육지도사, 노인생활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5개 직종의 노동자 6명을 모아 좌담회를 개최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이번 좌담회는 박경득 의료연대본부장의 진행으로, 돌봄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괴롭힘과 인권 침해 실태를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