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여(餘)'의 의미를 찾아 떠난 백제 여정
부여라는 지명을 접했을 때, '남을 여(餘)'라는 글자가 왜 고장의 이름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고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무엇이 그토록 풍요로웠기에 '남는다'는 의미를 품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백제라는 역사적 주제로 이어졌다.
그동안 백제의 무대를 공주나 부여라는 지리적 범위에만 한정 지어 생각했으나, 실제 백제의 영역은 호남 지역까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목포와 당진 등을 주요 거점으로 삼아 중국 및 일본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갔던 백제의 실상을 되새겨보게 된다. 특히 서울이 서라벌에서 유래했다는 설 이전에, 한성이 백제의 첫 번째 도읍지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서울 어딘가에 잔존할 백제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풍납토성에서 마주한 고대의 흔적
식물탐사대 등산 모임의 출발지인 천호역을 지나, 지난달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풍납동 방향으로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한강 변에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이 정박해 있는 듯한 형상의 풍납토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벽 안쪽에는 옛 우물터가 남아 있어, 귀를 기울이면 백제 시대의 웅성거림이 들려올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천호동이라는 지명 또한 천 개의 집을 뜻하는 천호(千戶)에서 유래했다는 점이 마치 천일야화처럼 신비롭게 다가왔다.
시장 골목에서 만난 뜻밖의 인연
북적이는 천호대로를 뒤로하고 풍납시장 안쪽으로 발을 들이니, 마치 고대의 어느 골목으로 순간 이동을 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시장의 풍경은 정겨운 분위기 속에 좌판과 상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생선과 조개, 과일과 어묵을 파는 상인들이 낯선 방문객을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수족관 속 우럭이 기포 사이로 움직이는 활기찬 모습과 함께, 백제 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온 듯한 '부여떡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찾다 막다른 곳에 다다랐을 때, 양손에 짐을 가득 든 노신사에게 길을 물었다. 그가 우물 위치를 설명하려던 찰나, 좌판의 한 여성이 말을 가로채며 길을 안내했다. 골목 끝까지 가서 다시 물어보라는 여인의 조언은 매우 합리적이었고, 남성은 미소를 지으며 여성의 뒤를 따라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혹시 풍납동에 머물고 있는 백제의 후예를 만난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운 여운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