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확산으로 일자리가 위협받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존의 고용 및 복지 체계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이 초과이윤 분배 문제를 촉발하자, 노동자와 시민이 직접 의사결정과 지분에 참여하는 '노동사회연대기금'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했다.

기술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 모델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과 노동문제연구소(김원섭 원장 겸 소장)는 지난 29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2026 한국노동사회포럼'을 열고 '반도체·AI 초호황 국면, K-양극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이날 발표에 나선 안정을 한국고용노동교육원 교수는 디지털 자본의 축적 문제를 단순한 이윤 분배 차원을 넘어 고용과 기술 통제, 사회적 참여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디지털 자본의 초과이윤이 사회적 인프라와 데이터, 공공 자원 등 사회생태계의 결합을 통해 발생한다는 점을 짚으며, 이를 해결할 제도적 장치로 노동사회연대기금을 제안했다. 안 교수는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적 선택과 개입을 통해 인간과 기계가 협업하고 숙련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기술의 설계부터 운용까지 참여하는 교섭과 협의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사회보험료 부과 방식의 전환과 재정 정책

생산 방식의 변화에 따른 사회안전망 개편론도 제기됐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디지털 및 자본집약적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고용 없이 이윤을 얻는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로 인해 임금 기반의 사회보험료 납부 부담이 네트워크 사업에 종속된 기업으로 전가되는 문제를 지적하며, 사업주 부담금을 임금이 아닌 이윤에 비례해 부과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러한 방식은 대기업의 기여를 높이는 동시에 고용을 많이 하는 노동집약형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으며,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여 조세 수입을 확보하는 방안과 병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사정의 엇갈린 시각과 사회적 대화의 과제

포럼 현장에서는 노사정 관계자들 사이의 날 선 공방도 이어졌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특구 프로젝트에 노동계가 반대해 온 특별연장근로 규제 완화 등 노동 특례가 포함된 점을 비판하며, 정부의 진정성 있는 소통을 촉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역시 서면을 통해 초광역특구법이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킨다고 주장하며 강력한 사회안전망 마련을 요구했다. 반면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은 기업의 과감한 투자를 위해 근로시간 선택권 보장과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사회적 대화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제도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정답을 찾아가는 방법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사례를 언급하며, 한국이 사회적 대화를 성공적으로 제도화함으로써 전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다는 의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