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 효과와 재정 압박의 이중주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임시 조치로 도입된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 7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이 제도는 물가 안정에 일정 부분 기여해 왔으나, 관련 재정 투입액이 5조 원을 넘어서며 국가 재정에 가해지는 압박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석유 가격 자체를 방어하기보다는, 고유가로 인해 실질적인 타격을 입는 저소득층과 생계형 운전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중동 전쟁이 격화된 지난 3월부터 휘발유와 경유 등 주요 석유제품의 공급 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최고가격제를 운영 중이다. 지난 6월 말 이후로는 가격이 동결된 상태로, 현재 보통휘발유 ℓ당 1784원, 경유 1773원의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유사의 손실분은 정부가 재정으로 보전하는 구조다. 정부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최고가격제 시행을 통해 물가상승률을 0.6%포인트 낮추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유가와 국내 가격의 괴리
실제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며 전쟁 전보다 50% 이상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휘발유 평균 가격은 26일 기준 ℓ당 1855.77원으로 나타나 1년 전과 비교해 11.6% 상승에 머물렀다. 이는 같은 날 갤런당 4.269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40.7% 폭등한 미국의 상승률과 비교했을 때 약 3.5배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지출은 심각한 문제다. 올해 추가경정예산 4조 2000억 원과 내년 예산안에 포함된 4분기 지원 예산 1조 4497억 원을 합치면 총 5조 649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여기에 유류세 인하에 따른 교통·에너지·환경세 세입 감소분 3조 3658억 원까지 더하면,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로 인한 재정 지출 규모는 총 9조 157억 원에 달한다. 내년에도 제도를 유지할 경우 예비비나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 왜곡과 고소득층 쏠림 현상
제도의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2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최고가격제가 지속될수록 가격 왜곡이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재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시장의 수요 조절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특히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적용되는 현행 방식이 고소득층에 혜택을 집중시킨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2일 보고서를 통해 2021~2023년 사이 유럽 18개국의 사례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정부 지출 1유로당 저소득 가구에 돌아간 혜택은 20%(20센트) 미만이었던 반면, 소득 상위 20% 가구는 40%(40센트)의 혜택을 누린 것으로 밝혀졌다. 자동차 이용 빈도가 높고 연료 소비가 많은 고소득층이 정책 수혜를 독점했다는 해석이다. IMF는 취약계층을 직접 보호하는 방식이 가격 억제 정책보다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22배 더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했다.
적재적소의 재정 집행 필요성
결국 정책의 초점을 가격 상한 설정에서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김현동 배재대 경영학 교수는 유가 상승으로 인해 실질적인 생계 고통을 겪는 계층에 재정을 집중하는 것이 재정 지출의 '적재적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한 가격 상한제보다는 화물차 운전자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선별적 지원이 정책적 효과를 더 크게 거둘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