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 심리' 강조했지만 전합 선고는 월 1건 미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 이후 강조해 온 '신속한 재판' 기조와 상반되게, 전원합의체(전합)의 선고 실적이 눈에 띄게 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경향신문이 분석한 결과, 조 대법원장이 임기를 시작한 2023년 12월부터 현재까지 전합을 통해 선고된 사건은 총 31건에 그쳤다. 이는 조 대법원장의 재임 기간인 약 34개월 동안 매달 한 건도 채 되지 않는 속도로 재판이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추세는 전임 대법원장들의 재임 시절과 비교했을 때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6년 재임 기간 동안 전합 선고 건수는 각각 116건이었으며, 이를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1.6건에 달했다. 반면 조 대법원장 체제에서의 월평균 선고 건수는 전임자들의 기록보다 43%가량 감소하며 재판 지연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재판 운영 방식과 격월 선고 체제가 지연 부추겨
법조계에서는 전합의 사건 처리 능력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김선수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석좌교수)은 지난해 8월 발표한 논문을 통해 전합 운영을 효율화할 경우 1년에 25~30건, 6년 동안은 최대 180건까지도 선고가 가능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재의 낮은 수치는 조 대법원장의 재판 운영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대법원장이 재판장으로서 사건의 순서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졌음에도, 사안의 시급성이나 경중에 따른 유연한 대응 대신 형평성을 명분으로 매번 동일한 순서로 사건을 다루는 기계적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합 선고를 두 달에 한 번꼴로 운영하는 격월 체제 역시 속도를 늦추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지난 8월 전합에 상정되었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내란 혐서 상고심 사건은 여전히 선고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및 명태균 관련 의혹 등 이른바 '3대 의혹' 사건 역시 지난 7월 선고를 미룬 뒤 전합에서 두 차례 기일을 열었으나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김 여사 사건은 구속 만기 전 판결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련 혐의를 다루는 소부가 추가 영장을 발부하는 이례적인 상황까지 발생했다.
사회적 갈등 해결사 역할 상실 우려
정치적·사회적으로 중대한 사건의 선고가 지연되면서, 사회적 갈등을 종결짓는 전합 본연의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원 내부에서도 전합이 최근의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 중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전합의 느린 처리 속도로 인해 정치적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에 유의미한 판례를 제시하는 기능도 약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위직 법관 출신의 한 법조인 역시 해외 대법원들이 전합 사건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과 대조적인 한국의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대법원이 전합을 통해 사회 규범과 질서를 정립하는 것이 핵심적인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처럼 연간 20~30건 수준에 머무는 사건 처리량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