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원미2동, 15년 넘게 이어온 마을 글쓰기 교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2동 행정복지센터 2층 대강의실에는 60대부터 80대까지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다. A4 용지에 적힌 글들을 경청하는 이들은 수필 낭독을 듣는 수강생들이다. 3월12일 오전 10시께, 수강생 여운순(62)씨가 '목련꽃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수필을 낭독했다. 베란다 앞 자목련을 매일 들여다보며 장애를 가진 동생들을 돌보며 숨 가쁘게 달려온 60여년의 삶을 그린 글이었다. 마지막 문장 '그래, 그동안 애썼다. 수고 많았어.'가 끝나자 청중에서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강사 박창수(62) 작가는 제목, 핵심 소재, 마무리가 딱 맞아떨어진 글이라며 섬세한 관찰의 힘을 칭찬했다. 김순자(72)씨도 '그동안 참 숨 가쁘게 달려왔다'는 문장이 '아, 그래 정말 열심히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 가슴이 뭉클하게 됐다고 반응했다. 글을 쓴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의 삶을 배우는 시간이 바로 이 교실의 풍경이다.
마을 신문 만들기에서 시작된 글쓰기 수업
원미2동 글쓰기교실의 역사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문사와 잡지사를 거치며 글쓰기를 몸으로 익혔던 박창수 작가는 1997년 독립해 프리랜서 작가 겸 기자로 활동해 왔다. 그가 부천 원미2동에 뿌리내린 계기는 순전히 '마을과의 인연'이었다.
당시 박 작가는 부천시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참여하며 원미2동 동장 김현규씨를 인터뷰했다. 동장은 마을신문 창간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술 사시면 오죠'라는 빈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주민 기자를 양성하고 마을신문을 만드는 일을 맡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쓰기 수업도 시작됐다. 처음에는 40~50대가 주축이었던 수강생들이 지금은 60~70대로 바뀌었다.
2012년, 수강생들의 글을 엮어 첫 공동 수필집 '글로 푸는 원미동 사람들'을 펴낸 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2020~2023년)을 제외하고 매년 책을 출간해 왔다. 2024년 10월에는 여덟 번째 공동 수필집 '내 얘기 좀 들어볼래요?'가 나왔다. 지금까지 글쓰기교실을 거쳐 간 예비 작가는 100여명, 수필가와 시인으로 등단한 이는 10여명에 이른다.
조용히 사라지는 수업, 어떻게 15년을 버텨왔나
글쓰기 수업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수강료가 5천원만 더 저렴해도 다른 동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고, 사회 변화에 따라 수요도 출렁인다. 그럼에도 원미2동 글쓰기교실은 어떻게 15년을 버텨왔을까. 박 작가는 세 가지 이유로 꼽는다.
첫째는 강사의 헌신이다. 박 작가는 경기 고양시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네 번 갈아타고 원미2동에 오고, 매주 수강생 원고를 하나씩 손수 첨삭한다. 강사료가 충분하지 않아도 15년간 결석이 없었다. 박 작가는 교실의 특별함을 '정'이라고 꼽는다. 된장, 고추장을 갖다 주고 김치까지 챙겨주는 수강생들이 있고, 스승의 날에 꼭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제자들도 있다.
둘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10년을 함께한 사람들이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삶을 공유하고, 봄·가을에는 함께 소풍도 간다. 성격 모난 분, 이기적인 분은 못 버틴다는 박 작가의 말이다. 기존 회원들의 분위기가 이미 그 사람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주는 치유와 유산
십년 전부터 수강해온 김순자씨는 글쓰기교실을 '대화할 수 있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암 환자도, 우울한 사람도 다 힐링하고 치유를 받는다. 처음엔 서로 속마음을 꺼내놓지 않지만, 누군가 먼저 솔직한 이야기를 글로 내놓으면 하나씩 둘씩 마음의 문이 열린다. 신인순(73)씨도 깡촌에서 자라 결혼 후에도 마음고생이 많았던 그는 상담도 받아봤지만 글쓰기가 더 효과적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슬프거나 속상하면 예전에는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는데, 글을 쓰고 나서는 많이 희석되고 마음도 편안해졌다고 한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돌보던 요양보호사 이양순 작가는 현장에서 마주한 노년의 얼굴들을 기록한 책 '나는 행복한 요양보호사입니다.'를 냈다. 시니어 수필가로 등단한 이양순 작가는 원미2동 글쓰기교실 '수다쟁이다락방'의 수강생이었다.
최고령 수강생인 안숙자(87)씨는 원미2동 글쓰기교실의 문을 두드린 건 2024년 초였다. 행정복지센터 게시판에서 우연히 강좌 공고를 봤다. 자서전 한 권은 꼭 펴내야겠다는 꿈이 있었던 그는 바로 등록했다. 이제는 글쓰기교실을 잊어버릴까 봐 달력에 목요일마다 동그라미를 쳐놓았다. 1940년 신의주에서 태어난 안씨는 일곱 살에 월남했다. 기독교 집안이었던 부모님과 다섯 형제자매가 공산주의 치하에서 숙청을 피하려고 맨몸으로 옷만 입은 채 집을 나섰다. 안내원을 사서 38선을 넘다 붙잡혀 수용소에 한 달간 갇혔다. 풀려난 뒤 평양 친척 집을 거쳐 개성으로, 다시 서울 약수동에 정착했다. 6·25 전쟁이 터져 공산군이 내려와 서울에 빨간 깃발을 꽂자 어머니가 기절했고, 1·4 후퇴 때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안씨는 내년 말쯤 자서전을 펴낼 예정이며, 인생은 뭔가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글로 마침표를 찍고자 한다.
김순자씨는 사위들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굴곡진 삶을 책으로 펴냈다. 말로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자신의 성장 과장을 담았다. 사돈이 그 책을 읽고 '사부인, 존경합니다.'라는 연락을 해왔고, 그 한마디에 글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김순자씨는 '노인들이 대화할 곳이 별로 없다'며 자녀들한테 얘기하면 잔소리로 알아듣지만 글은 내 속뜻을 정확하게, 걸러서 전달할 수 있어 받는 사람도 감동한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글쓰기를 시작한 건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해서였다. 속상하고 막막할 때, 화내고 싶을 때 상대방에게 말로 하면 싸움이 되지만 일기에 다 쏟아놓고 나면 후련해진다고 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묵은 일기장을 들춰본다.
문학이 스민 마을의 정체성
원미2동 글쓰기 수업 '수다쟁이 다락방'의 여덟 번째 공동수필집 '내 얘기 좀 들어볼래요?' 출간기념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행정복지센터에 걸려 있다. 이 교실의 지속적 지원에는 주민자치회의 역할이 크다.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온라인 채널로 새 수강생을 모집하고, 행사가 있으면 함께한다.
이 배경엔 원미동만의 정체성이 있다.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이 된 이 동네는,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 창의 도시로 선정된 것과 맞닿아 있다. 문학이라는 게 원미동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으며, 원초적으로 그런 토양이 있다는 김정원 원미2동 주민자치회장의 말이다. '물심양면으로 늘 곁에서 돕고 있어요. 평생 글 한번 써보고 싶었던 분들이 여기서 책을 냅니다. 이런 공간이 원미2동에 계속 있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