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수익을 복지基金로, 소멸 농촌의 희망을 찾은 마을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는 70가구, 약 130명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이 작은 마을이 최근 전국의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마을이 공동 소유한 태양광 발전소와 그로 번 월 1천만원의 순수익이 있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에 판매해 얻는 수익은 '구양리햇빛두레발전협동조합'이 공동 관리하며, 전액 마을 복지에 쓰인다. 마을식당 무료 급식부터 행복버스 운행, 탁구장과 그라운드골프장 설치, 청년회·부녀회·경로회 활동비 지원, 주민 여행과 문화 행사까지 모든 사업이 '햇빛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70가구 마을의 주민 주도 에너지 실험

구양리햇빛발전소의 시작은 20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한국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재관(58)씨가 고민의 불을 지폈다. 문재인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농어업비서관을 지낸 뒤 고향 여주로 내려온 최재관씨는 탄소 중립 시대에 재생에너지의 70~80%를 태양광이 감당해야 하기에 이 태양광이 농촌으로 몰려올 수밖에 없다고 통찰했다. 외부 자본이 들어와 농지를 잠식하면 농민들은 생존 위협에 직면한다는 우려를 바탕으로, 해법은 농민이 스스로 주인이 되는 것이라고 봤다.

처음 계획은 마을 각 가정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곧 벽에 부딪혔다. 20년 장기 계약이 필요하다고 하자 어르신들이 고개를 저었다. 고령화가 심각한 마을에서 20년 후를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 대안을 떠올린 전주영(60) 이장은 개인이 아니라 마을 자산에 태양광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로 산업통상자원부를 설득했다. 결국 '햇빛두레발전소' 시범사업 공모가 2021년 12월에 나왔다. 전국 10곳을 선정할 계획이었지만, 법과 제도의 벽이 높은 탓에 최종 선정된 곳은 구양리를 포함해 단 두 마을뿐이었다.

1㎿ 태양광 발전으로 월 1천만원 수익

공모사업에 선정은 됐지만 진짜 고비는 그다음이었다. 사업비 16억7000만원. 원래 설계는 10% 자부담에 90%를 정책자금(연 1.75% 저리)으로 융자받는 구조였다. 그런데 은행이 대출을 거부했다. 지역 농협은 태양광 대출 자체를 취급하지 않았고, 1금융권도 담보 없이는 거들떠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이라는 게 법인격이 없고, 마을 자산이라는 것이 담보 가치가 없는 탓이다.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다. 10년 동안 월 300만원씩 연금성 저축을 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10억 2000만원을 연 1.75%로 광주은행에서 받았다. 나머지 4억 2000만원은 신협의 태양광 전문 대출(연 5%, 경기도 이자 차액 지원으로 실질 3%)로 충당했다. 자부담도 당초 10%에서 더 늘려야 했다. 선례가 없어서 모든 과정이 힘겨웠지만,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전주영 이장은 말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햇빛소득마을' 사업에서는 태양광 시설과 그 수익을 담보로 하는 수익권 담보대출·동산 담보대출 방식을 도입해, 별도의 부동산 담보 없이도 마을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양리가 겪은 고생이 뒤따라 올 마을들의 길을 미리 닦아준 셈이다.

2024년 1~4월 햇빛발전소를 순차적으로 완공하고, 5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마을은 '수익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돈을 쪼개기보다는, 모아서 함께 누리는 편이 공동체를 살린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사무장을 뽑고 마을 복지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마을식당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원래 구양리에는 경로회에서 농한기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식사를 함께하던 전통이 있었다. 이를 확대해 어르신뿐 아니라 전 주민이 주 6일 점심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바꿨다. 2024년 11월부터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누구든 마을 주민이면 먹을 수 있다. 하루 평균 30여명이 찾아오고, 닭볶음탕 등 특별 메뉴가 나오는 날이면 더 붐빈다. 토요일까지 운영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평일에는 못 오는 직장인들이 토요일 날이라도 와서 같이 점심을 먹어야 마을 공동체를 느끼기 때문이다.

소멸 위기 새 대안…2500곳으로 확산

햇빛소득은 마을에 예상 밖의 변화를 가져왔다. 날마다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주민들 사이 유대감이 한층 깊어졌다. 특히 도시로 떠난 자녀들의 반응이 뜨겁다. 매일 부모의 식사를 마을이 챙기고, 무슨 일이 생기면 대신 연락할 마을 사람(사무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해 한다. 명절에 내려올 때면 태양광 시설을 둘러보고, 언론 보도를 챙겨보며 마을에 대한 자부심을 키운다.

태양광에 대한 인식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설치 전에는 전자파, 환경오염, 폐 패널 처리 비용 같은 루머가 팽배했지만, 지금은 전기요금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등 혜택을 체감하자 지붕 위 3㎾짜리 소규모 태양광까지 26가구가 설치했다. 수익 운영의 투명성은 이런 변화를 뒷받침하는 토대가 됐다. 마을 임원을 15명(사무장 포함 16명)이나 두어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다. 또 매월 임원회의를 열어 구양리햇빛발전소 수입·지출 내용을 빠짐없이 공개한다. 돈이 생기면 으레 다툼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이런 투명한 공유가 갈등의 싹을 미리 잘라냈다.

정부는 구양리햇빛발전소를 모범 사례로 삼아, 올해 500곳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전국에 햇빛소득마을 2500곳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지난해 8월 구양리를 찾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농촌 주민 모두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통한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시, 화성시를 비롯한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잇따라 견학을 오며, 구양리는 이미 '선진지'가 됐다.

구양리의 비전도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골 어르신들에게 겨울 난방비가 가장 큰 부담"이라는 인식 아래, 마을은 가정용 태양광을 3㎾에서 30㎾까지 늘리고 전기보일러와 저장장치를 결합해 '난방비 걱정 없는 마을'을 꿈꾼다. 마을 옆을 지나는 중부내륙고속도로 방음벽과 비축농지, 농수로 같은 공유지에 태양광을 추가로 설치해 발전 용량을 키우겠다는 구상도 있다. 그렇게 쓰고 남는 전기를 마을 단위로 모아 팔고, 저장장치까지 갖추면 에너지 '자급자족' 마을도 먼 얘기가 아니다.

지난 9일 낮 12시께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면 구양리 마을식당에서 주민들이 줄을 서서 밥과 국, 반찬을 담고 있었다. 김사인(74) 조리사는 "반찬이 겹치면 안 되니까, 매일 바꿔요. 그래도 고기는 하나 꼭 들어가죠"라고 말했다. 심연화(71)씨는 "옛날에는 밥을 세 끼 다 챙겨 먹지는 않았어요. 혼자 있으면 점심에 고구마 하나 쪄 먹고 그랬지"라며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그에게 이제 점심시간이 기다려지는 시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햇빛이 차린 한 끼 밥상이 소멸 위기 농촌마을의 희망 불씨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