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최초 미국산 복자, 풀턴 신 대주교 시복식 개최
로마 교황청, 미국 출신 주교 시복…가톨릭 역사상 첫 사례
24일(현지시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아메리카 센터 돔'에서 풀턴 신(1895∼1979) 대주교의 시복식이 거행됐다. 이례적으로 미국 출신 주교가 복자(福者) 반열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로마 교황청은 거룩한 삶을 살았거나 순교한 가톨릭 사제에게 교황의 승인을 얻어 가경자(可敬者), 복자, 성인(聖人) 등 호칭을 수여한다. 신은 마침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인 레오 14세 치세에서 시복을 받아 의미를 더했다.
'최초의 TV 전도사', 방송으로 신앙 전파
풀턴 신 대주교는 뛰어난 방송 능력으로 '안방 극장'을 공략한 인물이다. 1952년 TV 프로그램 '인생은 살아 볼 만합니다'를 진행하며 가톨릭 신도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큰 감명을 주었다.
주간 시청률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고, 방송계 권위 있는 에미상까지 수상하며 시사 주간지 '타임' 표지에 얼굴이 실렸다. TV가 보급되면서 직접 출연해 가톨릭 신앙을 전파한 '최초의 TV 전도사'로 불리며 20세기 미국 가톨릭 교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농촌에서 태어난 웅변가, 사목 활동의 전성기
신은 19세기 말 미 중서부 일리노이주 농촌에서 태어났고,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부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어릴 때부터 뛰어난 지능과 유쾌한 성격, 웅변 능력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일찌감치 세례를 받아 신앙에 눈을 떴다.
청소년 시절 성당에서 주일 미사 준비를 돕던 중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신부는 당황한 신을 나무라기보다 "괜찮다"며 "나도 어릴 때 실수가 많았는데, 너도 나처럼 신부가 되겠구나"라고 다독였다. 이에 감동한 신은 장차 신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신학교를 졸업한 뒤 1919년 일리노이주 피오리아 교구에서 사제로 서품됐고, 유럽으로 유학해 벨기에와 이탈리아 등에서 교리와 철학을 깊이 공부했다. 1930년대부터 학생 교육과 대중 강연에 매진했으며 라디오를 적극 활용한 점이 돋보였다.
정치·사회적 목소리, 교황의 찬사와 별세
신은 젊은 시절 2차대전을 일으킨 나치즘을 강하게 규탄했고, 1950년대 들어 공산주의 비판에 열을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풀턴 신 대주교 시복에 대한 대통령 메시지'를 발표하며 "신 대주교는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위협에 직면한 세상에 기독교의 가르침을 대담하게 전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1951년 주교가 된 신은 뉴욕 대교구 보좌주교를 맡았고, 이듬해인 1952년 TV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66년 뉴욕주 로체스터 교구장이 되었고, 3년 뒤인 1969년에는 대주교로 올라섰다.
1979년 10월 미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신을 포옹하며 "말과 글로 주님을 정확히 알린 당신은 교회의 충성스러운 아들"이란 찬사를 바쳤다. 그로부터 2개월 만에 신은 개인 예배당에서 기도하던 중 쓰러져 별세했으며, 향년 8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