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간 설계된 정교한 해킹 시나리오

세계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약 63억 달러(한화 약 8조 470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산을 탈취당한 사건의 전말을 공개했다. 바이낸스의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해킹은 단순한 침입이 아니라 가짜 채용 면접을 통해 직원의 기기를 감염시키는 등 수개월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 사건은 해커들이 직원 컴퓨터를 장악한 뒤 회사 내부의 인공지능(AI) 도구까지 악용해 가상자산 지갑에 접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격의 서막은 지난 6월에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바이낸스의 엔지니어인 A 씨가 AI 코딩 도구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변조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았고, 이로 인해 그의 컴퓨터가 악성코드에 감염됐다. 바이낸스 보안팀은 즉시 해당 악성코드를 찾아내 A 씨의 기기를 교체하고 접속 인증 정보를 수정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해커들은 이미 A 씨의 업무 내용과 암호화폐 지갑 관리팀에 대한 핵심 정보를 확보한 상태였다.

가짜 CEO 등장시킨 화상 면접의 함정

해커들은 9월 들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B 씨를 새로운 타겟으로 설정했다. 이들은 실제 채용 플랫폼을 활용해 B 씨에게 접근한 뒤, 가상의 회사 관계자들을 내세워 채용 면접을 진행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특히 가짜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참여하는 화상 면접까지 연출하며 B 씨의 신뢰를 얻어냈으며, 지원 과제를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악성 프로그램이 담긴 파일을 내려받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B 씨의 컴퓨터를 장악한 해커들은 바이낸스 내부 시스템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내부 AI 도구 악용해 63억 달러 탈취

바이낸스의 설명에 따르면, 해커들은 지난달 20일 감염된 컴퓨터와 사내 AI 도구를 결합해 암호화폐 지갑을 관리하는 개발자 2명의 업무 시스템에 접근했다. 이어 29일에는 한 개발자의 기기와 탈취한 인증 정보를 활용해 악성 스크립트를 실행했다. 이 과정에서 해커들은 내부 지갑의 거래 승인 시스템에 무단으로 접근하여 정상적인 출금 절차를 우회한 채 자산을 이동시켰으며, 결과적으로 약 63억 달러 상당의 자산을 빼돌렸다. 이번 사건은 역대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해킹이자, 일반 금융권 범죄를 포함할 경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절도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

피해 자산 98% 확보 및 보안 강화 대책

바이낸스는 현재까지 약 28억 5000만 달러(약 3조 8000억 원)의 피해 자산을 동결하거나 이동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또한 피해 규모에 해당하는 암호화폐 물량의 약 98%를 회사 자금으로 다시 확보했으며, 고객들에게 어떠한 손실도 전가하지 않을 방침을 재확인했다. 향후 바이낸스는 피해를 입은 시스템과 내부 AI 도구를 전면 재구축하고 직원 기기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AI 기반의 이상 거래 탐지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외부 전문가의 독립적인 검토를 받고 주요 AI 기업들과 협력해 보안 연구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한편,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북한 연계 조직인 '트레이더트레이터'를 지목했으나, 북한 측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관련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