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로 갈수록 가파르게 치솟던 원·달러 환율이 정부와 한국은행의 강한 메시지(구두개입)와 제도·수급 대책이 겹치며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구조적 달러 수급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뒤집기엔 한계가 뚜렷하다고 보고, 당분간 환율은 1400원대 중반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2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9.5원 내린 1440.3원으로 마감했다. 장 초반 1450원대에서 출발했지만 장중 1438원대까지 내려가며 변동 폭이 크게 나타났다. 직전 거래일(24일)에도 당국 메시지와 대책이 맞물리며 하루 만에 30원 이상 급락한 바 있다. 10월 1400원 초반에 머물던 환율이 11월 1420원대, 12월 초 1470원대로 올라선 뒤 23일 1480원대까지 치솟았던 흐름을 감안하면, 단기 과열을 진정시키는 효과는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국은 “원화의 과도한 약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동 메시지로 시장에 개입 의지를 분명히 했다. 대통령실에서도 “말이 아닌 행동”을 언급하며 개입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시사했다. 여기에 기획재정부는 해외주식 매도 후 국내 주식으로 자금을 옮기는 경우 일정 기간 해외주식 양도세를 한시 비과세하는 방안,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 배당 관련 세제 혜택 확대 등 ‘달러 유출을 줄이고 원화 수요를 늘리는’ 유인책을 내놨다.
국민연금도 ‘지원 사격’에 나섰다. 외환당국과의 외환스와프 한도를 확대하고, 해외자산에 대한 환헤지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현물환 시장의 달러 수급 부담을 덜어준다는 구상이다. 환헤지가 확대될 경우 달러 공급 효과가 발생해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뒤따랐다.
하지만 중장기 전망은 신중론이 강하다. 시장이 꼽는 핵심은 ‘구조적 달러 수요’가 쉽게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의 달러 보유, 대미 투자 확대,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개인의 해외 투자 확대 등 달러를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는 요인이 누적돼 있고, 이 흐름이 단기 처방만으로 꺾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은 원화 강세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가계부채 부담이 큰 상황에서 정책 선택지가 제한적이라는 관측도 많다. 실제로 한국은행은 최근 “현시점에서 금리 인상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고환율이 곧바로 ‘위기’로 직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과거 외환위기·금융위기 국면처럼 주가 하락과 자본 유출이 동시에 나타나는 양상과 달리, 최근에는 주가·금리·환율이 함께 움직이는 구간이 이어졌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국가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CDS 프리미엄도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결국 관건은 “단기 진정”을 “지속 가능한 안정”으로 바꾸는 후속 전략이다. 환율은 단순 가격 지표가 아니라 경제 신뢰의 결과라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정상화(유동성 관리)와 재정 건전성 유지, 장기자본 유치 강화 같은 체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반복된다. 환율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기엔 이른 시점이며, ‘정교하고 지속 가능한’ 대응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 시장의 공통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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